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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집

회개와 보상

by 해찬솔의 신학 2016. 3. 6.






                                                                      



                                                                          



                                                                                                    회개와 보상
                                                                                                 D. L. Moody
                                                                                                                                                              역 : 김한영 목사



                                                   본문  :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히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회개는 우리들이 굉장히 많이 들은 주제 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근본적인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회개는 복음보다 먼저 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향한 것이라면 회개는 복음을 향한 것입니다.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 전에는 복음을 받을 혹은 믿을 준비가 돼있지 않은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그는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는 한 가지 메시지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계속 그 말만 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린 양인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길을 지시하지 않고 거기서 중단하였다면 그가 성취한것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스도가 와서 같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밖으로 보낼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영화롭게 된 후에 성령님이 강림하였을 때 우리는 베드로가 오순절 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전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설교가 기적적인 결과를 나타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아덴으로 들어가서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라고 동일하게 외친 것을 봅니다.


 그러나 내가 회개가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나는 잠시 그것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도록 하고 그것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회개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회개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고를 받고 공포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두려운 느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받고 공포를 느끼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바다에서 무서운 폭풍을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아주 세속적인 사람들이었지만 두려움이 왔을 때, 그들은 갑자기 조용해져서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그것이 회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폭풍우가 지나자 그들은 전과 같이 저주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그 나라에 무서운 재앙을 보냈을 때 바로왕이 회개하였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결코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를 벗어난 순간 그의 마음은 이전 보다 더 굳어졌습니다. 근느 죄에서 돌이킨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로부터 돌이키지 않으면 회개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회개는 금식이나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주간 중 혹은 한 달 중 혹은 일 년 중 어떤 때를 택하여 금식할 수 있으나 죄를 회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후회하는 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유다는 자결할 정도로 진지하게 후회하였지만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만일 유다가 주님께 가서 머리를 숙이고 자기의 죄를 자백하였다면 그는 용서받았을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 대신 제사장들에게 가서 자신의 목숨을 끊은 겁니다. 그는 주님께로 가서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행을 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참 회개가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영혼의 죄를 대신하여 몸의 열매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달랠 수는 없습니다. 그너한 환상에서 멀어지시기를 바랍니다.


 회개는 죄의 깨달음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나는 죄를 너무 깊이 깨닫고 밤에 잠도 못자는 사람을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식사 한 끼도 즐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상태에서 몇 달 동안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회심하지 않았습니다. 죄의 깨달음과 회개를 혼동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다른 한 가지, 회개는 어떤 한 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같은 과오를 범합니다. 한 술주정꾼이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음주를 금했습니다. 그것은 잘 한 일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이 사람은 경멸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을 저주했습니다. 나는 곧 이어 이 사람이 술에 취해 있은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죄 하나를 단절하는 것이 회개는 아닙니다. 나무 전체를 뽑아 내야하는 경우에 나무가지 하나를 잘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불경스런 사람은 저주를 그쳐야 합니다.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영혼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회개는 이 죄 혹은 저 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하고 당신들은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성경적 정의를 한 번 내리겠습니다. 그것은 "얼굴을 옳게 대한다."의 뜻이 있습니다. "돌이키라, 돌이키라." 사람의 느낌이 적을 수도 클 수도 있지만 그가 죄로부터 돌이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생각의 변화"로도 설명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1장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한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두 사람이 두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한 형제에게 "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 합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여 가겠소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다른 아들에게 돌이킨 다음 그에게도 같이 말합니다. 그랬더니 그는 "나는 안 가겠소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한 후에 그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밭으로 나가서 호미를 메고 풀을 가꾸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회개에 대한 정의 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선해절 거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면 그것이 회개입니다. 옳은 것으로의 전환입니다. 사람은 얼굴을 하나님께 돌린 채 태어납니다. 그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는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는 옛 삶을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립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정확히 말 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무언가 기적적인 느낌이 자기를 주장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이것은 신비적인 믿음입니다. 몇 년 전 나는 한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항상 한 가지 대답만을 나에게 해 왔습니다. 그 후 그는 몇 달 있다가 죽었습니다. 나는 오년간 그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매년 그는 "아직 내 마음에 동요가 없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의 동요가 없다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동요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것인데, 아직 그런것이 없다. 나는 당신이 아는 것과 같이 보지 않는다?"고 그는 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죄인임을 알지 안는가?" "예, 나는 죄인입니다." "자,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긍휼을 베풀기 원하다는 사실을 알지 않는가? 하나님께는 죄 용서가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회개하고 자기에게 나오기를 바랍니다." "예, 나는 그것을 압니다만 나는 아직 동요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 같은 대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불쌍했습니다. 그는 지난 2년전 무덤으로 내려갔습니다. 6년간이란 긴 세월을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 기간 동안 그가 한 모든 말은 나는 아직 동요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 중에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무슨 이상한 느낌입니까? 성경 어디에서도 사람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 곳은 없습니다.


 다윗은 반역하는 아들 압살롬에게 아주 무서운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그의 마음이 아직 변화되지 않았는데 그를 용서하는 것보다 더 큰 부당한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개가 하지 않았을때 두 사람 사이에는 진정한 화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실수를 범하지 않습니다. 곧 다윗은 그 일 때문에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다시 한 번 아버지를 보좌에서 밀어내려고 애썼습니다.
 한 가지 생각이 더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서의 참된 회개를 보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그 영혼을 만나 줍니다. 얼마 전에 내가 콜로라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드는 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주의 주지사가 교도소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감방에서 그는 창문을 화초로 가득채운 소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들은 아주 조심스레 잘 가꾸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지사는 교도소를 들여다보다가 그 화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저것들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것들은 나의 것입니다."고 그 불쌍한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너는 이 화초들을 좋아하느냐?" "네, 지사님," "너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느냐?" 그는 오랫동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장기수였습니다. 주지사는 이토록 화초를 좋아하는 그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너는 왜 이 화초들을 그토록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의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이런 화초에 대하여 무척이나 아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와 보니 내가 이것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날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주지사는 만족하여 "젊은이, 자네가 그토록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자네가 자유를 누려도 된다고 생각하네." 하고 말하고 그를 그 자리에서 사면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서 진정한 회개의 화초를 발견하면 구원은 그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오늘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회개를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후201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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