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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집

보물이 있는곳에 마음도

by 해찬솔의 신학 2011. 4. 17.

 

 

                           보물이 있는곳에 마음도

                                                                                                  (본문 마6;21)

 

                                                                                                                                                                                                       설교 : 김한영목사

 

 

최근에 우리 사회에 새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도시의 교통문제입니다. 서울에는 자동차가 이미 수백만여대를 넘었습니다. 또한 지하철도 너무 복잡하여 지옥철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예전 같으면 십오분 걸리던 거리가 지금은 두시간 걸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인구가 그렇게 많이 증가한 것은 아닐니다. 그런데 왜, 교통이 이렇게 복잡한 것입니까?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많이 움직이고 있습니까? 무슨 목적을 위해서 우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움직이고 있습니까? 틀림없이 어떤 목표가 있어서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목표가 있어서 다닙니다.

 벌레나 짐승들은 두가지 목적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즉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외에도 다른 목적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살아 남기위한 것 외에도 돈과 명예와 권력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또한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이 즐기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부를 때 본문에서는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보석이나 돈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좀더 포괄적으로 우리가 땅위에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보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시대에 특별히,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돈 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많은 보물을 쌓는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위에 태어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많은 보물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성경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개발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두 달란트 받았으면 그것을 네 달란트로 만들고 다섯 달란트 받았으면 그것을 열 달란트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일해서 보물을 많이 만드는것, 많이 얻는것 그것은 참 좋은것 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보물을 어디에 쌓느냐에 관심을 쓰느냐는 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느냐 그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하늘에도 말고 땅위에도 말고 중간쯤 쌓으면 어떨까요? 우리가 말해서 양다리 걸치는 것이죠.

 

 구약성경 열왕기하 17장24-41절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가 강해져서 이스라엘 북쪽을 점령했을 때 바벨로니아, 에집트 등 이방인들을 많이 불러다가 정착시켰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가지고 온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몇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포로된 이스라엘 사람을 불러다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여호와를 섬기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도 역시 자기 신들을 섬겼습니다. 왕하 17장 33절에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 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41절에 보면 '그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더니."이 사람들은 양다리를 걸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받지 않아야 되니까 하나님도 두려워하고 또 자기 신들에게도 복을 받아야 하니까 자기신들도 섬기고 어떤 종교는 이것을 허락할지 몰라도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성경이 분명히 말씀한대로 투기하는 하나님이시므로 이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내가 자기 남편도 섬기고 또 자기 애인도 하나 두어서 검기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우리에게는 두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든지 땅에 쌓든지 중간에 쌓는것은 없습니다.

 하늘에 쌓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한다는 의미요, 땅위에 쌓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익, 탐욕, 명예를 위해서 쌓는것을 뜻합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실은 땅에 보물을 쌓습니다. 또 어떤 때는 우리 자신이 속아 지금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고 생각 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쌓습니다. 이것은 보물을 땅에 쌓고자하는 의욕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것이 믿음이 없으면 너무 위험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다 쌓아 놓으면 나는 뭐 먹고 살지? 병들면 어떻게 하지? 나의 자녀들은 어떻게 하지? 자꾸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들을 위해서 실제로 땅에 보물을 쌓으면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것 처럼 착각하고 우리가 잘 믿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농부가 자기의 아내에게 기분이 좋아서 왔습니다. 암소가 송아지를 두마리 낳았는데 한마리는 불그스름하고 한마리는 얼룩한데 내가 송아지 한마리를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어느 송아지를 하나님 송아지로 하느냐고 묻자 그중에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2개월후에 남편이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어느것이 하나님의 송아지인지 작정도 안하고 하나님의 송아지가 죽었다고 하면 말이 되느냐고 했더니 남편은 내 마음에 불그스름한 송아지가 하나님의 송아지로 작정했는데 구태여 그 송아지가 오늘 죽고 말았다고 존스 목사님이 써 놓았습니다. 항상 죽는것은 하나님의 송아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도 어떤 때는 하나님이 나의 병을 고쳐주는 수단으로, 나를 대학에 합격하는데 보조 능력으로, 부자로, 국회의원으로 되게 하는 심부름꾼으로 하나님을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국회의원이 돼서, 학자가 돼서, 부자가 돼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면 보물을 하늘에 쌓는것이지만 전자의 경우 그것은 ㅂ조물을 땅에 쌓는것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고 하니까 또 교회에 연보 많이 하라는 말이구나 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교회에 연보하는 것도 하늘에 쌓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너무 약합니다. 보통 십일조 하라 그러는데 하나님께 다 받아놓고 경우 십분의 일 하나님께 바치고는 그것을 하늘에 쌓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십분의 일 이상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상황에 따라서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교회 평균보다 못사는 분들은 십일조도 못내는 분들도 있겠지요 아주 잘사는 분들은 십분의 구를 내야 되겠지요 아주 못사는 분들은 오십분의 일 밖에 낼 수 없겠지요. 그러나 어찌 하던간에 하나님한테 많이 받아놓고 십분의 일 내고서 하늘에 보화를 쌓는다고하면 안되겠지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십분의 일이 아니라 모두 입니다. 100%를 요구 하십니다.

 롬 11장36절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런데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돌아가고 십분의 구는 내가 차지하고 그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의 일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연보하는것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것도 하나님의 공의를 이룩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것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예술 활동을 하는것도 곧 하늘에 보물을 쌓는것입니다.

 연보에 대해서 설교를 전혀 안하는 것도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 하는것이 아닌가하고 1년에 한번만을 하기로 하여 오늘 이 설교를 합니다.  연보를 하는것은 하나님 앞에 당연한 의무 입니다. 우리 국민이면 마땅히 세금을 내서 나라가 움직이도록 해야되고 우리 성도면 마땅히 연보를 해서 교회가 하는일을 돕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돕는 그 이상의 가치를 연보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이 말하고 있는것 처럼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연보를 함으로써 내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먼저 바쳐져야 연보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리고 그 연보라야 진정한 연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연보를 먼저 함으로 우리 마음이 따라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제가 98년부터 모 중견회사에서 컴퓨터 강의를 시작한적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이라서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완전히 무료로 컴퓨터 강의를 하였습니다.그런데 학생들이 들락날락 정성이 없었습니다. 회사 간부와 회의를 하기를 돈을 안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등록금을 직장인들에게 받기로 하였고 후에는 전부 다시 그들직장에 활동비로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출석율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역시 돈을 내야 관심을 쓴다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현대인에게는 돈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관심이 따라 갑니다. 연보를 함으로 교회에, 하나님 나라에, 구제, 선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효과를 거둘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의 영적 훈련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보에 대해서 몇마디만 하겠습니다.

 연보에서 중요한 것은 액수를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 바치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는 것에는 액수가 포함되어 있겠지요. 한달에 수백만원 소득있는 사람이 한 십원씩 헌금하는 것을 정성을 다해 연보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가 옆전 두닢은 내는것은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연보입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서 연보해야 그것이 하나님께 기뻐 받으시는 연보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바치는 연보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연보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회계 집사외에는 누가 얼마나 연보하는지 일체 모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앞에 사람을 위해서 연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연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미신화도니 불교에서 시주하듯이, 관리에게뇌물주듯이 하나님께 연보 많이 하면 나에게 더 많이 축복해 주시겠지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연보 액수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성,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것은 직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거기에는 좀먹고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훔쳐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보물 때문에 더 큰 손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적이 들어서 물건만 가져가면 다행인데 사람을 해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 갑니다. 우리 주위에 돈이 없었더라면 참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돈 때문에 못된 사람이 된 경우가 참 많습니다. 권력을 잡지 않았더라면 권력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부터 원망을 받고 아주 못된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경우가 있습니다. 대학을 안가고 무식한 사람이 됐다면 사람들 앞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참 좋은 사람이 됐을텐데 괜히 대학에 가고 조금 알았다고 해서 교만하여져 미움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더 하급인간이 되고 더 비참한 인간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부자, 지식있는 자, 권세있는 자에게 경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부자 뿐만 아니라 권력, 지식, 명예 있는자들에게 다 해당되는 말이겠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보물을  모았다면 가장 보람있게 가장 가치있게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장 가치 있게 쓰려면 성경에 가르침대로 해야 합니다. 즉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개발해서 그것으로 돈, 권세, 지식, 명예, 무엇을 만들었든간에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서 연구해야합니다. 즉 우리 일생을 무엇을 위해서 보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무슨 목적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히 돌아 다니시겠습니까?  내자신을 위해서 일년을 부지런히 돌아다녀 봐야 그래서 보물을 땅에 잔뜩 쌓아 놓아봐야 그것에는 좀이 먹고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낭비되고 우리 자신도 다 손해를 보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이웃, 사회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와 시간과 기회를 어떻게 하던지 이용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여러분의 시간시간이, 여러분의 활동 하나하나가 가장 고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갑자기 고급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17-19절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와 같이 권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것을 후히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여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 얼마나 귀하신 말씀입니까? 부한자들은 그것 때문에 마음이 놓아지지 말고 그것에 소망을 두지 말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것으로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나누어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은 부한자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있는자. 명예 있는자에게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것으 잘 이용하기 보다는 잘못 이용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적인 권력은 절재적으로 부패하고 좀더 강하면 좀더 못되게 사용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약에 내가 하나님께서 권력, 지식, 명예, 그 모든 것을 주셨을 때 그것을 남용할 것이라면 나에게 주지 마십시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더 큰 손해를 주실것을 왜 우리가 받아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참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어떤 보물을 주시든 간에 그것을 땅에 쌓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늘에 쌓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것으로 취급을 해야 되며 우리 활동 전부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은 다 믿는자에게 거룩한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모든 돈이 연보처럼 취급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셔서 이 세상에 보내시고 모든 자연과 환경을 우리에게 주시며 각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며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하셔서 베드로전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소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 되어야 가장 온당하고 합리적으로, 그 목적에 적합하게 사는것이 우리의 삶을 가장 보람있고 우리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교통체중이 생길 정도로 부지런히 뛰되 그 보물을 하늘에 쌓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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