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집

[스크랩] 감사절의 의미

by 해찬솔의 신학 2009. 11. 1.

 

 

                                                       감사절의 의미

                                                                (시 100!-5절)                                                김한영 목사

 

   추수 감사 주일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이 추수 감사 주일은 1621년 9월 6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아메리카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이듬해인 1622년 가을에 곡식을 수확하여 하나님께 추수감사를 한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의 첫 감사는 알려진 것처럼 농사를 짓고 곡식을 수확한 후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1621년 12월 26일, 미국 동부 플리마우스 해변에는 남녀노소가 해풍으로 검게 탄 얼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로 얼싸안고 눈물의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죽음의 항해 끝에 신대륙에 도착했던 영국의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180톤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목선에 몸을 싣고 바람을 의지해서 시속 2마일의 느린 속도로 살인적인 파도와 싸우면서 항해했고, 항해중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리고 산더미 같은 파도에 의해 돛대가 부러지는 순간 모두가 바닷물에 생매장이 되는가 싶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기적, 원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상륙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바다로 나가 상륙지점을 찾아야했던 암담했던 나날들...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신대륙에 몸을 디뎠으니 그들의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플리마우스 해변에서 손에 손을 잡고 벅차 오르는 감격으로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 당시 그들이 부른 감사의 찬미시가 바로 본문 말씀인 시편 100편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여러 감사의 시 가운데 시편 100편을 선택했을까요? 그것은 시편 100편의 내용이 바로 그들의 신앙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메이플라워호에 탔던 영국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자유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형식적인 종교에 불과했던 영국 국교의 박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신들의 나라와 정든 고향을 떠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죽음의 항해 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때문에 마침내 구사일생으로 신대륙에 도착하여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며 살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쟁취한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화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플리마우스 해변에서 솟구치는 감격을 억제하지 못하고 시편 100편으로 마음껏 하나님을 찬미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부른 찬미시의 중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누구에 대한 감사 입니까?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하는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절과 2절의 말씀을 다 같이 읽어봅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이 시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마음껏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자유에 대해 암시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로마 제국에 의해 지독한 박해와 고난을 당했습니다. 원형극장에서 사나운 사자에게 산채로 뜯어먹히기도했고, 카타곰이라고 하는 토굴 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기독교가 전래되었을 때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다가 순교를 당했습니까?

 오늘날에도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가 많습니다. 가까운 북한만 하더라도 드러내놓고 예수를 믿을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비록 종교의 자유가 있다 하더라도 이슬람 국가 같은 곳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슬람 국가 같은 곳에서는 기독교를 믿으면 온갖 사회적인 불이익이 가해지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는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예수를 마음껏 자유롭게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점에서는 수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성경과 신앙서적을 사 볼수가 있고,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기독교의 진리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감사의 조건을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고 믿으면 교회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감사의 조건입니다.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던 영국의 청교도들은 이러한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생명을 건 항해를 했습니다.  비록 항해 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자유를 쟁취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사의 첫 번째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껏 믿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사의 조건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이 사실을 기억하면 맨손인 상태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죽음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 데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요 우리의 하나님이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양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두 번째 조건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시편 23편에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을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도다."

 감사의 조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암의 위험한 곳에 이를지라도 지켜 주십니다. 원수들 앞에서 높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평생토록 선함과 인자함으로 대우해 주십니다. 이뿐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들 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이처럼 놀라운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 주신 것은 우리를 당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사 이러한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한 데 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 인간들을 찾아오셔서 목자가 되어 주신 것 자체가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은혜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 아닙니까?  목자없는 양같이 사망의 길에서 방황하다가 죽어 마땅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친히 찾아오셔서 목자가 되어 주셨으니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 에레미야 30장 22절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언약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이 언약사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민의식을 고취시켰고,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2천년 가까이 나라없이 세계 각처에서 방황할 때도 민족성을 잃지 않게하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미천한 우리 인간들 입니다. 이런 우리가 천지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되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겐 대단한 축복인 것입니다.  가진 것이 있고 소출이 풍성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 은혜만으로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끝으로 본문 5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대저" 라는 단어는 이유를 의미하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즉 4절에서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지어다." 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 136편은  교독문에도 실려있을 정도로 우리가 감사절에 주로 많이 읽는 말씀인데  이 시편 136편은 모든 절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야 말로 감사의 영원한 이유요 주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왜 감사의 조건이 됩니까?  가장큰 이유는 하나님의 "선""인자" 라는 속성을 통하여 우리가 죄에서 구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중 "인자(仁慈)라는 말은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하는데 이 헤세드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사랑" 또는 "은혜"로도 많이 쓰여지고있는 용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창조주요 지존자로만 계시는 분이라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워할 대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혹자는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겟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해 타락했기 때문에 만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하나님을 믿지않고 세상을 살다간 인생들에게는 주어지는 지옥의 무서운 형벌은 없었을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하려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인자를 베풀어 주셔야 합니다. 인간은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히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지 못해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사람이라면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것이 더 나은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 사랑과 은혜의 모습을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존자의 지위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죄에서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는 사실을 영원토록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조건은 결코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조건이 얼마나 많으지, 그리고 우리가 하나니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하신과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사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감사해야할 이유중의 맥미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감사하는 성도에게 더욱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감사는 성도의 특권이며 하나님의 더 큰 은총을 받아 누릴 수 있은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성도가 세상에서 더 풍요롭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미국이 세계에서 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홀에 몸을 실었던 신앙의 개척자들이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하나님께 감사했던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덕을 지금까지 보고있는 것입니다.

 소출이 없다고 감사를 일허버리지 마십시요.  넉넉하지 않다고 감사를 줄이고 축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빈손일지라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의 그 빈손을 반드시 하나님이 가득히 채워주실것을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2009년 11월  김천 "대산교회" 에 추수감사주일에 조청받아 설교할 내용 입니다

출처 : 김한영 박사 신학모음
글쓴이 : 해찬솔 원글보기
메모 :

'설교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물이 있는곳에 마음도  (0) 2011.04.17
고통의 의미  (0) 2011.04.11
[스크랩] 행복한 가정의 창조비결  (0) 2010.02.19
상황을 역전시키는 주도적인 삶  (0) 2008.09.07
하나님의 백성  (0) 2008.08.31
죽음을 극복하는 성경적 방법  (0) 200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