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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집

하나님의 백성

by 해찬솔의 신학 2008. 8. 31.

 

 

                               하나님의 백성

                                                              수 5:1-6절

                                                                                            설교: 김한영 목사

초대교회 시대에는 세상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로마 시민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시민이 되기만 하면 로마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명실공히 미국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것이 가장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미국의 힘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나라도 미국 국민을 함부로 구금할 수 없습니다. 약소민족과는 다릅니다. 한국에 와 있는 미국 병사들이 한국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미군 부대와 가까이에 있는 동두천이나 평택, 송탄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횡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나라의 힘을 믿고 자만스러운 행동들을 합니다. 요즘 들어서 미국의 힘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낍니다. 말이 6자 회담이지 사실은 미국의 생각을 6개 나라가 어떻게 맞추어 줄까를 고민하는 회담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어느 나라의 백성인가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국가의 힘이 그 개인의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이 국가는 힘이 약하지도 않고, 그 시대가 일시적이지도 않습니다. 로마의 힘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영국을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영제국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제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힘이 막강하지만 역사는 말합니다. 그 힘은 얼마가지 못할 것이라고.....,

그러나 어느 시대도 보지 못했던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 그 힘이 영원히 보존되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다름 아닌 나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생각에 대해서 서투르다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 다녀, ○○교회 성도야”라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야, 나는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사람이야”라는 것에는 서투른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은 천국에 가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 오늘 이 시간에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해서 제일 먼저, ‘우리가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한 표현입니다.

과거에는 사탄에게 묶여서 세상에서 맴돌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노예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 성경은 세상에서 나와 요단을 건너게 되었다는 사실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이쪽 나라에서, 저쪽 나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성문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요단을 건넜다는 말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문을 열고 이 쪽 나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미상으로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에 속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다년간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요단을 건넜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이것은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을 믿음으로 성취해야 하는 일들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요단강만 건너기만 하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약속의 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약속하시고 또 이미 분배받은 그 땅을 쟁취하는 일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가나안 일곱 족속이 소유하고 있지만 소유권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등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여러분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등기 권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넌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땅의 소유권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소유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같은 삶의 방식은 하나님 나라의 소유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분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단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유권을 결단코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방식에 따라 살 수 밖엔 없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땅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등기 이전까지 받은 땅이지만 믿음이 없어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 땅이니 나가라는 말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과 평생 하나님의 주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 여리고 성에서만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확실한 승리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그들은 믿음이 식어지고 나약해지면서 소유권을 회복하기 보다는 그들과 타협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타협하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때문에 여러분의 삶이 이 땅에도 천국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게 져서 우리의 소유권을 상실하지 마시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주권회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하지 마시고 범사에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요단강을 건넜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쪽 나라에서 이쪽 나라의 성문에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것이 구약에서는 할례를 받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례란 남자의 성기의표피를 잘라내는 것이어서 외형적으로 표시가 되지만, 그것은 내적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는 결단의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5장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믿음 없는 행동으로 그들은 광야에서 돌고 돌다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후손들 중에는 할례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곧 하나님의 백성의 계보가 끊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할례를 다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례를 행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이제 막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 아니라 기존의 7족속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들이 공격해 온다면 할례를 받음으로 고통 중에 움직일 수 없는 가운데서 꼼짝없이 당하는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취득하는 것은 그들의 군사력이나 힘에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식을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외적인 헌신의 표시를 가져야 했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헌신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신약에 오면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시가 세례입니다.

여러분이 받는 세례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 달력에 언제 세례를 받았다고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세례 받을 때 한량없이 부어졌던 성령의 은헤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피부의 한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라고 햇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육신에 속한 백성이 아니라는 부정의 표시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이기적인 것을 잘라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날의 방법이 죽고 새로운 방법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옛 방식, 옛 모습을 뒤에다 줄줄이 달고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따라서 그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그 뒤에 있는 세상적인 것들을 모두 다 잘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식, 예전에 쓰던 인간적인 생각과 욕망들을 잘라버리는 것이 세례라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세례가 마치 겉옷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옷은 입는 사람 마음에 따라서 입을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례 받은 삶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단지 세례를 언제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누구의 백성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할례는 죄악으로 인하여 본성적으로 타락한 인간적인 자기 의지를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기 의지는 선하지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늘 죄짓는 방향으로 인간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CF광고입니다.

 

정적인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노출광고를 하는 것이나 화장품에 성기와 비슷한 문양으로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선전에서는 물건 팔아먹으려고 선이 이기는 것으로 말하지만 인간의 의지는 나쁜 것도 자기 합리와 시켜서 결국은 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타락의 본성입니다.

이처럼 타락한 본성에 의해 지배받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해라해라’그러고, 한쪽에서는 '하지 마라 하지마라‘그러는데 결국 어떤 쪽을 택합니까? 때로는 죄지을 생각을 하고, 부정한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은 선한 쪽을 택해서 살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삶입니다. 성령께서 인도 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악으로 물든 자기 본성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아세례도 바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자기 본성에 의하여 죄를 짓기 전에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는 것이 유아세례입니다. 때문에 유아세례는 일찍 받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세례 받은 다음부터 얼마나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았습니까?

오늘 본문처럼 요단강을 건넜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교회에 다닌다고 다 천국 백성이 아니고, 큰 교회 목회자라고 다 천국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완성되기까지.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로 오실 때까지 천국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아직까지는 관용이 있고, 용서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천국에서는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도 쭉정이가 있고, 알맹이가 있고, 염소가 있고, 양이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염소이고 누가 양인가, 누가 쭉정이고, 누가 알곡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교회 안에서는 쭉정이가 알곡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쭉정이를 교회 밖으로 쫓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알곡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교역자와 알곡성도들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쭉정이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쭉정이가 알곡이 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알곡은 알곡, 쭉정이는 쭉정이라고 단정지어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 될 수 있는 충만한 은혜의 시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알곡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알곡이라고 확신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늘 넘어질까 조심하는 겸손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충실한 알곡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쭉정이 같아서 저런 사람이 뭐 하러 교회 나와서 하나님 먹칠하고, 교회 욕 먹이고, 교회의 부흥을 막는가 하고 정죄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언제 어떻게 변화될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요단강을 건너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넜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듯, 교회 나왔다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옛 성품을 잘라버리고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성령님께 간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성결하고, 우리의 생각이 신실해야 하나님의 자녀로 충실한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5장 10절을 보면 그들이 하례를 받은 다음에 유월절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언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었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를 기억하여서 우리 자신의 욕망과 속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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