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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필

한하운 시인(추천도서)

by 해찬솔의 신학 2011. 11. 10.

 

 

                                                                    한하운 시인

                                       한하운 전집 책을 추천 합니다. 제가 고교2년때 시집을 처음 대하면서

                                       시인의 글을 읽고 얼마나 눈물지었는지 몰라서 다시 구입해 볼려는 시

                                       집으로 넘 감동깊은 책임니다.

                                   

 

 

한하운 [韓何雲, 1920.3.20~1975.2.28]

 

 

 

 

1919∼1975. 시인. 본명은 태영(泰永). 함경남도 함주 출신. 종규(鍾奎)의 아들이다. 1932년 함흥제일공립보통학교, 1937년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39년 동경 세이케이고등학교(成蹊高等學校) 2년을 수료하였다. 그 해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1943년 북경대학 농학원을 졸업하였다.

 

1944년부터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에 근무하였으나 1945년 한센씨병(나병)의 악화로 관직을 사퇴하고 서점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1946년에는 함흥 학생데모사건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바도 있다. 그 뒤 치료비로 가산을 탕진하고 1948년 월남, 유랑의 생활을 하였다.

 

그 뒤 자신의 투병 생활과 함께 1950년 성혜원(成蹊園), 1952년 신명보육원(新明保育院) 등을 설립, 운영하였고, 1953년 대한한센연맹위원회장으로 취임하여 나환자 구제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66년에는 한국사회복귀협회장을 역임하는 한편, 무하문화사(無何文化社)라는 출판사도 경영한 바 있다.

 

그의 창작 활동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문단 활동은, 1949년 이병철(李秉哲)의 소개로 ≪신천지 新天地≫ 4월호에 〈전라도길〉 외에 12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전개되었다. 같은 해에 첫 시집 ≪한하운시초≫를, 1955년에는 제2시집 ≪보리피리≫를, 1956년에는 ≪한하운시전집≫을 펴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는 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나환자라는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객관적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서정적이고 민요적인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도 그의 시적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유해는 경기도 김포군 장릉공원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저서 외에,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1957), 자작시해설집 ≪황톳길≫(1960), ≪정본(定本)한하운시집≫(1966) 등이 있다.

 

 

하운시초(韓何雲詩抄)


한하운(韓何雲)의 시집. 변형 A5판. 70면. 1949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하였다. 작자의 첫 시집으로 〈전라도길〉·〈손가락 한마디〉·〈벌〉·〈목숨〉·〈삶〉 등 25편의 시와, 그를 시단에 소개한 이병철(李秉哲)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이 나올 때 한하운은 방랑생활 중인 나병환자였다. 따라서, 이 시집과 그 뒤에 발표된 그의 모든 시에는 나병환자라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과 그에 따른 처절한 체험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 체험은 그 자체가 특이한 것이기에 호소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하운은 감상을 자제하고 그것을 객관화함으로써 표현 효과를 더욱 높이고 있다. ‘소록도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전라도길〉에는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시의 제5연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는 대목은 제6연의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과 더불어 화자의 나병이 절망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는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 하는 객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객관성은 화자의 비통한 체험에 대한 상상적 추체험(想像的追體驗)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집에는 또 처참하게 버림받은 자의 애절한 꿈을 민요적 가락으로 읊은 시도 수록되어 있다.

 

〈파랑새〉라는 작품이 대표적인 예인데, 소월시(素月詩)의 민요적 기풍을 방불하게 하는 이러한 경향은 제2시집 ≪보리피리≫에 수록되어 있는 〈보리피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시집은 한국 신문학사에 등장한 최초의 나환자 시집으로서, 특이한 체험을 객관적 어조와 민요적 가락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참고문헌≫ 나의 슬픈 半生記(韓何雲, 人間社, 1957), 韓何雲詩鑑賞(朴巨影 解說, 人間社, 1959), 韓何雲의 文學과 生涯(金允植, 새빛, 1975.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하운 연보>
▲1919 : 함남 함주군(咸州郡) 동촌면(東村面) 쌍봉리(雙峰里)에서 한종규(韓鍾奎)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 가계(家系)는 3대를 과거에 급제한 선비 집안으로 지방 지주였음.
▲1925 : 함흥으로 이사
▲1926 : 함흥 제일공립보통학교 입학. 내내 우등생, 음악과 미술에 뛰어났음.
▲1931 : 봄에 몸이 무겁고 붓기 시작함(나병 발병의 시초)
▲1932 : 보통학교 졸업. 이리 농림학교(裡里農林學校) 입학, 수의축산과(獸醫畜産科) 전공.
▲1934 : 시와 소설을 습작. 순정의 여인(당시 여학생) R을 사귐.
▲1936 : 봄, 경성대부속병원(京城大附屬病-현, 서울대 부속병원)서 나병 확정 진단.
▲1937 : 이리 농림학교 졸업. 일본 동경 성혜(成蹊)고등학교 입학.
▲1939 : 동경 성혜고등학교 2년 수료, 나병이 악화되어 귀국 요양. 10월, 중국 북경으로 감.
▲1941 : 중국 북경대학 농학원 축목학계(畜牧學系) 입학.
▲1943 : 동 농학원 졸업, 귀국.
▲1944 : 함경 남도 도청 축산과 근무. 5월, 도내 장진군으로 의원(依願) 전근. 가을에 경기도 용인군으로 전근.
▲1945 : ㆍ봄, 나병 악화. 관직을 사직, 함흥 중앙동으로 귀가, R의 도움을 받아가며 치료. 이 때부터 본명인 '태영(泰永)'을 버리고 '하운(何雲)'을 씀. 문학 공부에 전념. ㆍ8ㆍ15 광복 후 재산을 몰수당하고, 노점 책장수ㆍ[건국서사](建國書肆) 운영.
▲1946 : 3월 13일, 함흥 학생데모사건에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풀려남. 모친 사망.
▲1949 : ㆍ[신천지] 4월호에 <나시인 한하운 시초>(癩詩人 韓何雲詩抄)라 하여 시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에>외 12편이 실리게 됨. ㆍ첫시집 <한하운 시초>(정음사) 간행(시 26편 수록) ㆍ8월,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 정착촌인 하천 부락(河川部落)에 입주.
▲1950 : 3월, 경기도 부평 소재 나환자 정착촌인「성계원」으로 이주, 자치회장에 선임됨.
▲1952 : 5월, 부평에 [신명보육원](新明保育院) 창설, 원장이 됨.
▲1953 : ㆍ경기도 용인에 [동진원](東震園) 창설. ㆍ6월, 재판 <한하운 시초>에 5편 추가 간행. 8월 이후 4개월간 신문과 국회에서 한하운의 시집과 관련, 그의 정체에 대해 논란이 벌어짐.ㆍ시 <보리피리>를 [서울 신문] 10월 15일자에 발표.
▲1954 : [대한한센총연맹] 결성, 위원장이 됨.
▲1955 : ㆍ3월 제2시집 <보리피리>(인간사) 간행.ㆍ시 <비창(悲愴)>을 [평화 신문] 4월 5일자에 발표.ㆍ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를 [희망] 5월∼57년 1월호에 걸쳐 연재.
▲1956 : ㆍ6월, <한하운시전집>(인간사) 간행 - 시 48편 수록. 수필 <나의 시작 수업(詩作修業)>을 [현대문학] 12월∼다음해 1월호에 걸쳐 발표.ㆍ시 <은진미륵불> 발표 - [자유문학] 12월호
▲1957 : 10월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간행(인간사)
▲1958 : ㆍ3월 [청운보육원] 설립, 원장. ㆍ수필 <큰 코 다친다>(신문예 7월호), <인간에 대한 반항정신으로>(신문예 9월호), <어느날의 단상(斷想)>(신문예 12월호), <사진에 대한 불연속적 관견(觀見)>(사진 문화 12호) 발표. ㆍ시 <인간 추방>(사진문화 12호) 발표.
▲1959 : ㆍ4월, <한하운 자작 시 해설집>(인간사) 간행. ㆍ시 <어느 velt는 살고 있다>(서울대 수의대학보 2집)ㆍ<벽화에 붙이는 글>(이리농림학교 새싹 6호) 발표. 수필 <영원한 민족의 서정시-소월의 시를 말한다>(신문예 8원호) 발표. ㆍ나병이 음성으로 진단받아 사회 복귀, [한미제역회사] 설립, 회장 취임.
▲1960 : ㆍ7월 서울 명동에 출판사 [무화문화사](無何文化社) 설립. ㆍ8월 자작시 해설집 <황토길>(신흥출판사) 간행. ㆍ수필 <첫사랑의 요오델가(歌)>(여원 3월호)ㆍ<방랑과 향수>(새벽 10월호) 발표.

▲1963 : 시 <세월이여>ㆍ<오마도>(이상 새빛), 수필 <애염전(愛染箋)>(야상) 발표.
▲1964 : 시 <포인세치아 꽃>ㆍ<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수필 <분뇨소> 발표
▲1965 : 수필 <물전쟁>(재무120호) 발표
▲1966 : 시 <회심(回心)>(인천신문)ㆍ<금유월(今六月)>(일요신문) 발표
▲1968 : 시 <올봄에도 꽃은 피는데>(새길 151호)ㆍ<장승>(사상계 5월호), 수필 <나의 소하(銷夏)>(새교실) 발표. 4월 간경화증 발병.
▲1969 : 시 <귀향>(새길 159호) 발표.
▲1970 : 시 <춘일지지>ㆍ<낙엽>ㆍ<춘와>ㆍ<파고다공원>ㆍ<포인세치아 꽃>(이상 시인), 시 <귀로>(교정 129호)ㆍ<어떤 인생>(새길 168호)ㆍ<자유당>(한국문학전집) 발표.
▲1973 : 전남 고흥군 도양면 소록도에 시비(詩碑) 건립.
▲1975 : 3월 2일 인천시 십정동산 39번지에서 간경화증으로 사망. 경기도 김포군 계양산 장릉 공원 묘지 안장.
▲1977 : 유고시 <백목란 꽃>외 19편 [한국문학] 6월호에 발표됨.
▲1989 : 시집 <가도가도 황톳길>을「지문사」에서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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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 전집 - 한하운 (지은이), 인천문화재단 한하운 전집 편집위원회 (엮은이)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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