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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식물의 행성

by 해찬솔의 신학 2011. 5. 29.

 

 

 

                                              식물의 행성

                                                                                                                                                                                                          글 : 김한영 박사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걸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지구를 우리가 지배하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지구는 엄연히 식물의 행성이다. 우리는 종종 발을 밭을 갈아엎고 나무를 베어내며 우리가 이 지구를 호령하며 사는 줄로 착각하지만 식물은 우리를 가소롭다 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의 무게를 다 합한다 해도 식물의 무게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지구는 단연 식물이 꽉 잡고 있는 행성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과나무를 심고 길러 사과를 따 먹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사과나무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사과나무가 우리로 하여금 탐스러운 사과를 먹고 싶게 만들어 사과나무를 심고 기르게 하는 것이다. 과일이란 식물이 자기의 씨앗을 먼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채택한 전략이다. 부모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씨앗이 그야말로 발밑에 떨어지면 스스로 드리운 그늘에 자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씨앗을 맛있는 과일 속에 넣어 동물로 하여금 그걸 먹고 먼 곳에 가서 배설하게 하면 그곳에서 배설물을 양분 삼아 자랄 수 있다. 물론 과일을 만드는 데 드는 투자가 아까워 씨앗을 그냥 바람에 날려 보내는 민들레 같은 식물도 있다.

 

 동물처럼 직접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니며 짝짓기를 하지 못하는 식물이 안쓰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식물은 자기는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벌과 나비로 하여금 꽃가루를 이 꽃 저 꽃 배달하도록 만든다. 기껏해야 단물 조금 주면서 우리 인간은 꽃을 아름답다 하지만, 꽃은 사실 식물이 꽃가루를 날라줄 동물들을 유혹하기 위해 세상천지에 펼쳐보이는 그들의 성기이다. 벌과 나비는 식물이 고용한 '날아다니는 음경(陰莖)'이고, 몇 평 되지도 않는 정원이지만 잡초와의 전쟁이 장난이 아니다. 일주일만 돌보지 않으면 잔디밭이 온통 잡초투성이다. 잡초들은 어디서 그렇게 끊임없이 날아드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벌써 몇 시간째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잔디 사이로 숨어있는 잡초를 뽑고 있다. 잔디는 우리 인간 대표화 도대체 무슨 계약을 맺었기에 주말마다 나를 이처럼 철저하게 부려 먹는 것일까?

 잡초를 뽑고 있는 내 머리 위로 벌들도 분주하게 살구나무의 꽃 사이를 날고 있다. "너의나 나나 이 무슨 자진한 노예살이란 말이냐?"라고 긴 한숨을 쉬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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