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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어느 행복한 결혼식

by 해찬솔의 신학 2007. 5. 24.
어느 행복한 결혼식
※독자분들 중에서 더 많은 칼럼을 보시고자 요청하시는 분이 계셔서 일반 칼럼 사이사이에 기존에 출판되었던 <영혼은 비자가 없다.1995>내용중 일부도 동시에 연재합니다. 제가 영혼에 대해 천착해온 길을 짚어보실수 있고, 영혼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살필 수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길진 
어느 날 나는 한 가슴 아픈 내용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뉴욕 맨해턴 251 West 92st에 사는 두 아이의 어머니인 이미혜라는 여인이었다. 우연히 나의 글을 읽고 자신의 사연을 적어 보낸 것이었다.
가슴 아픈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자신의 남편에게 죄스러움이 없지는 않지만, 이국 땅에서 고생을 하면서 살아 남아야 할 두 아이의 어머니라는 데에 힘이 되었던 것이다.
철없었던 때 만난 그들의 사랑은 화려한 결혼식을 뒤로 미루고 열심히 살면서 부모님께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 동안 남편과 그녀의 노력은 아랑곳없이 슬픈 얘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나이 19살,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언니의 초청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만난 남편은 24살이었다.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는 당연히 그들이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일찍이 어려서 생모와 이별하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 정을 주리며 할머니, 작은 아버지 댁에서 자랐던 남편은 온순하고 어질었으며, 더욱이 부모님에 대한 공경심이 매우 컸다.
그의 아버지는 20년 가까이 필라델피아에서 ‘델리 그로서리’ 가게를 운영해 온 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님의 하나뿐인 아들로서, 아버님의 좋지 않은 건강 때문에 부모님께 남편은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했다.
남편은 오랫동안 군생활(미국 군인으로 8년간 근무)과 계속하여 왔던 공부도 접어둔 채 아버지 가게에서 직접 경영을 맡아왔다.

그러나 많은 꿈을 안고 행한 그들의 미국행은 악마의 얘기처럼 남편을 영영 그녀의 품으로 돌려주지 않았다.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고 나오던 남편은 2인조 권총 강도에게 돈과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막막함은 슬플 수도 없을 만큼 그녀를 세상 밖으로 밀친 채 외면하고 말았다.
뉴욕 생활과는 달리 필라델피아는 운전조차 할 수 없는 그녀의 능력으로는 두 아이와 함께 남편의 그림자를 안고 눌러 살 수가 없었다. 등 떠미는 시댁의 차가웠던 냉대와 떠올리기조차 싫은 인간 관계의 많은 기억들로 정신을 추스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녀의 삶에 있어서 필라델피아의 생활은 삭제하고 싶은 한 부분이었다. 엄청난 일을 당한 그녀에게 이제는 며느리가 아닌 딸로 여긴다며 죽을 먹어도 같이 먹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하면서 이 일은 돈으로 해결해야 할 단순한 교통 사고도 아니니, 평생 서로 힘을 합하여 아이들만이라도 잘 키워야 된다던 따뜻한 말씀은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남편의 사고 당시 병원 수술비로 약3만 달러가 나왔었는데,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병원비 보상 문제 때문에 몇 차례 서류 서명 건으로 시부모님과 만난 이후로는 지금까지 1년 4개월 동안 연락도 없고 손주들의 안부도 묻지 않는 시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전화 한 통도 없는 현실이 살아 있는 그녀의 세 식구보다 부모님의 정을 그리워했던 죽은 남편을 더 비참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이제 겨우 4살, 3살인 두 아이들의 진로와 그녀 역시 이민 두어 살도 안된 이민 초년생으로 하느님에게라도 호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천륜을 무시한 남편의 목숨값이라던 남들의 비난도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앞으로 많은 새털같은 날들을 원망과 한숨으로만 지내기에는 그녀에게 아무런 대책도 힘도 없었던 것이다.
만일 남편이 종업원이었다면 법적인 문제로 진전되었을 것이었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처분만 바라고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것이다.
남편이 가게 종업원으로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와사고 지점이 가게 건물밖이라는 사실 때문에 보험 문제와 보상 문제에 하나의 혜택도 없다고 하는 시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그녀는 기가 막혔다. 그렇지만 남편은 그날 매상을 들고 가게 문을 나서자 2인조 권총 강도가 권총을 남편 머리에 대면서 그 순간 돈을 빼앗아 달아났던 것이고 그 돈을 찾으려고 뒤따라가다가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남편은 강도가 쏜 권총을 맞고 그만 숨지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 경험이 미약한 어린 그녀는 어떠한 충고라도 감사히 받을 마음으로 나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그녀의 간절한 소원은 생전에 남편과 정식으로 양가 합의하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늦었으나 남편과의 영혼 결혼식을 하게끔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조졸한 결혼식이 있었다.
신부 한 사람만이 참석한 결혼식이었다. 그러나 신부의 얼굴은 이 세상 어느 신부보다 아름다웠으며 행복한 듯 보였다. 마치 곁에 이미 먼저 가버린 신랑이 있기라도 한 듯…….
그 영혼 결혼식 후 그녀의 남편은 꿈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듯 행복해 하였단다. 그녀는 지금 아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영혼 결혼식은 의욕적인 새삶을 살아가고자 한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부디 다른 생에서나마 그녀의 남편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나가기를 빌어본다.

                                                     월간조선 : 입력날짜 : 2007-05-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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