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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아내 VS 연하남편

by 해찬솔의 신학 2007. 5. 24.
연상아내 VS 연하남편

SITUATION#1 ‘엄마 보고 싶어’ 발언
21세기가 도래하고 ‘2’자가 가장 많았던 2002년 2우러 22일, 김작가와 난 8년간의 비밀 연애를 끝내고 꿈 같은 결혼식을 감행했다. 피로연 때 마신 보드카 세 장 덕에 김작가가 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서 첫날밤을 따로 지냈던 경미한 사고를 제외하고, 우리의 결혼식은 완벽했다. 미달이와 의찬이(극중)가 화동을 해 주었고, 식이 끝나고 경품 추첨을 한 것까지 사람들이 두고두고 좋았다고 얘기했다. 신혼 여행도 완벽했다. 신혼집 세팅도 완벽했다. 문제의 저녁녘 전까지 내 결혼은 완벽할 것 같았다. 문제의 날, 집 정리 마무리 작업에 동원 되신 친정 엄마는 서른 셋 다 자란 딸을 결혼시키고도 뭐가 그리 아쉬웠는지 하루종일 쓸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다가 집으로 가시기 전, 내 손을 꼭 잡고 울먹이셨다.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3월 초 아직은 시린 바람 때문인지, 쓸쓸히 동아서시던 친정엄마의 뒷모습 때문인지, 괜시리 눈물이 났다. 위로가 필요했던 난 김작가를 바라보았다. 김작가는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내겐 날 누구보다 걱정해주는 든든한 남편이 있지.’ 눈물을 닦는 나에게 김작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도 엄마 보고 싶다!” 그 순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실이 떠올랐다. ‘아차차~, 이 사람 나보다 세살이나 어렸지!’

정작가: 5년이나 지났지만, 난 당신의 젖은 눈망울과 떨리는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말 그땐 ‘오 마이 갓!’을 연발로 외치고 싶었다. ‘나도 우리 엄마 보고 싶다’가 남자 입에서 나올 소린가?
김작가: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고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난 배운대로 했을 뿐이다.

정작가: 모 군인 출연 프로를 보면서, 자기 엄마가 아닌 걸 분명히 알면서도 수십 병의 군인들이 무대로 튀어나와, ‘저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쉴!합니다!’ 하고 목이 터져라 외친 게 재밌는 방송을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라 생각했는데, 당신을 보면 실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역시 그런 건가? 모든 남자들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먹일 때가 있나?
김작가: 아빠 뱃속에서 열달동안 살다 나온 몇몇 남자 녀석들은 ‘아빠 보고 싶어요’라고 외치면서 운다는 말을 용궁 근처를 지나가다가 거북이 택시 기사한테 언뜻 주워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정작가: 좋다, 남자들도 그리움을 느낀다는 것까진 인정하겠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건, 그 순간은 절대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거다. 남편하나 믿고 시집 온 아내에게 얼마나 다리 힘 빠지는 말이었을지 당신은 가늠조차 못 할 것이다. 남편이란 자리는 아내를 품고 보살펴야 하는 자리 아닌가?
김작가: 난 당신을 보살펴주려고 결혼한 게 아니다. 전에 말했듯이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면서 기대고 엉기는 여자는 내 취향이 소화를 못한다. 내 이상형은 독립적이고 시크한 커리어 우먼이다. 당신은 내 이상형이고, 그래서 결혼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정작가: 내 말의 논지는 ‘엄마 보고 싶어’ 발언이, 당신이 나보다 세 살 어리다는 사실에서 나온, 부정적인 부산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최근 결혼하는 커플 중 12.6퍼센트가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라고 하니 선배로서 그들에게 적당히 포기하고 살아가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문을 연 것이다.
김작가: 연하남편과 살면서 포기할 것이 생겼는가?

정작가: 솔직하게 다? 상처 받으면 어쩌지?
김작가: (후시딘 연고를 꺼내며) 약 바르면 금방 낫는다.

정작가: 심리적으로 당신은 나한테 완벽한 울타리는 못된다. 나이 차이만큼의 구멍이 있는 것 같다. 큰일이 생겼을 때 전적으로, 알아서, 옳은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하기가 힘들다. 당신을 세상에 내놓고 100퍼센트 안심이 안 된다. 어른들한테 철없이 굴지나 않을까, 동네 ‘양아’ 형들에게 맞고 다니진 않을까? 실제로 방위 시절 중딩에게 삥까지 뜯기지 않았나?
김작가: 참 엄마들이나 하는 소리다. 그건!

정작가: 당신에겐 아직 없는 흰머리와 주름살 때문에 한없이 우울할 때가 있다. 당신이 ‘우리 마누라 내일 모레 불혹이야~. 그래서 안 아픈 데가 없어~’ 하고 농담을 날릴 땐, 겉으로는 웃지만 솔직히 가슴은 무척 쓰리다. 나보다 더 탱탱한 당신의 엉덩이를 시샘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기분 참 그렇다. 젊음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라고나 할까?
김작가: 김 많이 먹으면 흰머리 안 생긴다. 검은 깨도 좋다더라. ‘불혹’을 강조하는 건 ‘불혹’ 이라는 어감이 웃겨서 그런 것뿐이지 특별한 악의는 없다. 엉덩이가 탱탱한 건 유전이다. 난 오히려 젊은 남편과 살면서 또래들보다 젊게 살 수 있는 장점을 역설하고 싶다. 얼마 전에 앞머리를 뱅 스타일로 커트하고 반응이 뜨거웠지 않은가? 대학원 강의 나갔다가 학생으로 오해 샀다면서 자랑하던 당신이 난 무척 자랑스러웠다.

정작가: 뱅~! 반응 뜨거웠지.
김작가: 연하 남편과 살면서 누리는 특권 중에 참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이제 우리는 노년이 길다. 나는 결혼한 당신 친구의 오빠 남편들보다 길게는 10년 이상 일할 것이고, 돈을 벌어올 것이다. 또 10년은 더 ‘아리아~’를 부르게 해 줄 수도 있다. 밤마다!

정작가
: (박수를 치며)물론 그 점은 베리 굿! 비록 밤마다는 아니지만. 신혼 때도 밤마다는 아니었잖아!
김작가: 포인트 좀 빗나가지 마라.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연하남과 결혼한 여자들에게 성공했다, 능력 있네! 등의 표현을 쓰며 추켜세우는 건, 연하남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무례한 표현이다. 애시튼 커쳐와 결혼한 데미 무어가 여자들의 로망이라고 떠들어대면서 연하남을 마치 여자에게 빌붙어 편하게 살려는 남자인 양 폄하하는것이다. 애시튼 커쳐가 능력이 없어 데미 무어와 결혼했겠는가> 아니다. 사랑하기에 나이 같은 건 상관 안 하는 멋진 남자다. 그러니 이제 여자들은 연하남들에게 예의를 좀 갖췄으면 좋겠다. 당신도 세 살 어린 나와 결혼한 걸 굉장한 능력이 양 학생들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자랑하는데, 그거 아니라고 본다.

정작가: 알겠다. 그런데 하나만 묻자.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때 꼭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김작가: 그거 그냥 웃기려고 한 말이다. 웃으라고.

정작가: 무슨 소리. 그때 울컥하던 당신, 생생히 기억한다.
김작가: 참, 웃기려고 한 말이라니까. 당신도 막 웃었잖아.

정작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랬지. 우길 걸 우겨라.
김자가: 아, 정말 부끄러우니까 빨리 끝내자.

정작가: 부끄러운 건 아냐?


*자세한 내용은 ELLE 본지 2007-5월호에서 확인하세요.


글: 정진영&김의찬(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작가)
피처 에디터: 박성미
일러스트레이션: SOLE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