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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0M 정상에서 해가졌다(기적의 생환)

by 해찬솔의 신학 2007. 6. 3.
8400m 정상에서 해가 졌다 … 기적의 생환 [중앙일보]
`설맹 걸린 동료와 생사 함께했다` 새벽에 귀환한 대원들
해발 8100m에 설치된 캠프4. 깎아지른 절벽, 만년설을 깎아 만든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겨우 텐트를 치고 돌출된 바위에 로프를 묶어 고정시켰다. 로체 등반대원들은 이곳에서 하룻밤 새우잠을 잔 뒤 13시간 악전고투 끝에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다음날 새벽에 캠프4로 돌아왔다. 로체=김춘식 기자
"안전하게 내려오고 있습니까? 들리면 제발 무전기 키를 한 번만 눌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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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울부짖듯 소리를 질러댔지만 무전기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엄홍길(47.㈜트렉스타) 대장은 물론 로체샤르(8400m) 정상에 올랐던 변성호.모상현 대원, 그리고 셰르파 등 4명이 모두 3대의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무전기도 터지지 않았다. 베이스캠프(5220m)는 거의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럴 수는 없는데…."

히말라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아마다블람 봉우리가 노을에 붉게 물들던 5월 31일 오후 6시50분(한국시간 오후 10시5분), "베이스 캠프,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이라는 엄 대장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날아들었고, 베이스캠프는 일순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이후 엄 대장 일행과 베이스캠프의 무선 교신이 완전히 두절돼 버렸다.

정상에 오른 시간이 문제였다. 오후 7시가 넘으면 어두워지는 히말라야에선 오후 2~3시 정상에 올라야 하고, 그 이후엔 과감히 돌아서야 하는 게 산악인들의 철칙이다. 오르는 게 목적이 아니고, 살아 돌아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엄 대장 일행이 로체샤르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50분. 히말라야 등정 사상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정상에 오른 예가 있었는지, 있었다고 해도 살아서 돌아온 적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엄 대장이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니었을까' '그 시간에 정상에 오른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야'.

누구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불길한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모든 대원과 셰르파가 텐트 밖으로 나와 로체샤르 정상을 주시했다. 시력이 2.0을 넘어 3.0에 가깝다는 셰르파들의 육안으로도, 망원경과 취재용 망원렌즈로도 아무런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었다.

"헤드랜턴 불빛도 안 보여."

오후 8시쯤, 누군가 깊은 한숨과 함께 절규에 가까운 말을 뱉어냈다.

설상가상으로 자정 무렵부터는 짙은 안개가 몰려와 더 이상 관측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시간은 벌써 오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통신이 두절된 지 6시간째. 엄 대장에 앞서 캠프4(8100m) 사이트까지 루트를 개척했던 배영록 대원은 "캠프4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13시간이 걸렸지만 정상에서 캠프4까지 내려오는 데는 아무리 길어도 5시간이면 족하다"면서 "지금쯤이면 이미 캠프4에 와 있어야 정상"이라며 엄 대장 일행의 안전을 걱정했다.

충격에 휩싸인 기자는 거의 포기 상태에서 '엄홍길 대장, 하산 중 실종'이라는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전 1시15분. 조용하던 무전기에서 갑자기 헐떡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캠프4. 먼저 왔음. 무전기는 분실했음. 나머지 대원들은 뒤에서 귀환 중."

셰르파 사다 파상의 목소리였다. 베이스캠프는 다시 한번 환호성에 묻혔고, 가슴을 졸이던 대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엄 대장과 교신을 하고 싶었지만 이들은 텐트에 들어서자마자 통나무처럼 쓰러져 잠이 들었다고 했다.

1일 아침, 겨우 엄 대장과 교신이 됐다.

"아니, 4시간이면 온다는 거리를 10시간이나 걸려서 내려온 이유가 뭡니까."

"변성호가 설맹(雪盲.눈에 반사되는 강한 햇빛을 받아 일시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상)에 걸렸어요. 두고 내려올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많이 걸린 거에요."

"…."

"사실은 나도 죽는 줄 알았어요. 어쨌든 살았으니 다행이죠, 뭐."

로체=김춘식 기자



[등정 성공한 엄홍길 대장 인터뷰] "서로가 생명의 은인"

여기가 로체샤르 정상. 13시간의 사투 끝에 정상에 오른 엄홍길 대장이 따라오던 셰르파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캠프 4(8100m)에 머물고 있는 엄홍길 대장의 목소리는 고소증세 때문에 잔뜩 잠겨 있었다.

-새벽에는 어디 있었습니까.

"변성호 대원이 정상에 오르자마자 설맹에 걸렸어요. 바람은 불고, 춥기는 하고, 대원 한 명은 장님이 됐고. 정상에는 얼마 있지도 못했습니다. 셰르파 한 명이 로프를 잡고, 제가 앞에서 사인을 주면 변성호가 내려오고 모상현이 뒤에서 변 대원을 잡았습니다. 어두워서 하산 루트를 잠시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변 대원은 엄대장을 '생명의 은인'이라고 했다. 변 대원은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내려온 엄 대장이 정말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무전으로 수없이 불렀는데 대답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날은 어두워지고 앞도 못 보는 변 대원을 데리고 내려오는데 무전 받으려니까 장갑 벗어야죠, 마스크 벗어야죠, 맨손으로 영하 40도 추위에 쇠붙이를 잡아야죠. 엄두가 안 납디다. 그래서 대답을 못했습니다."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겠네요.

"정상에서 대원들 서있는 사진만 몇 장 찍었습니다. 고마운 분들을 위해 깃발을 여러 장 준비했는데 한 장도 못 꺼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후원해 주신 중앙일보와 KBS.KT, 협찬해 주신 신한은행.㈜트렉스타에 말로나마 감사를 전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돌아오니 기분이 좋네요. 정신력이 대단합니다.

"사실은 이 친구들(변성호.모상현)이 내 은인입니다. 혼자였다면 이미 포기했을 겁니다."

로체=김춘식 기자

2007.06.02 01:18 입력 / 2007.06.02 06:34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