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2006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2001년 수개월 동안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3000억원을 조성했다』
발언의 주인공은 金大中(김대중) 정권 당시 정부기관의 고위급 인사였다. 그는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을 쏟아놓더니 잠시 흥분했다. 그에게 「돈을 모은 이유가 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그는 『북쪽에 보낼 돈이었다』고 했다.
─어떤 방법으로 돈을 모았습니까.
『알아서 만들라고 했어』
─그쪽에서 말을 잘 듣던가요.
『나도 말이 안 통할 줄 알았는데 그게 통하더라구. 나도 놀랐어』
─한 군데서 3000억원을 조달했습니까.
『한 군데는 아니야』
─돈은 북쪽에 보냈습니까.
『보낸 걸로 아는데 그건 확실하지 않아』
─사용처를 모르고 거액을 조성했다는 말입니까.
『내가 쓸 돈이 아니었으니 나도 모르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여기까지만 얘기하자』며 얘기를 중단했다. 「말을 해놓고 보니 막상 후회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후 기자는 그를 몇 차례 더 만나려 했지만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았다. 가끔 전화통화를 하는 정도였다.
그 인사가 다시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별도로 취재를 시작했다. 증언만으로 구체적인 사실을 찾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해외펀드 조성 후 손실처리 가능성 과연 금융기관들이 3000억원이라는 거액을 비밀리에 조성할 수 있었을까. 이해가 가질 않았다. 국책은행에서 근무하는 한 중간간부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각 금융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개별 상품을 일일이 이사회가 지정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부서장(은행장) 전결로 특정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내 상품이라면 금감원의 추적에 포착된다. 비자금 조성용이라면 해외에서 펀드를 조성한 후 손실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액수에는 제한을 받지 않는다』
유사한 사례로 2000년 對北송금 당시 현대전자는 해외공장 매각대금 중 1억 달러를 中東(중동)의 현대건설 페이퍼컴퍼니에 대여한 후 손실처리했다.
기자는 月刊朝鮮 2003년 12월호에서 단독 보도한 「對北비밀 송금사건 특별검사팀」의 수사기록 2000페이지를 다시 꺼냈다. 남북 頂上회담의 代價가 과연 5억 달러인지, 추가로 돈이 전달됐을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특검이 이뤄지던 당시만 해도 남북 頂上회담 이후에 對北관련 비자금 조성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때였다.
먼저 특검팀이 남북 頂上회담 이후의 상황을 수사했는지 「對北송금사건 특검법」을 살펴봤다. 특검법 2조에 수사대상이 명시돼 있다.
<1. 한국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대출한 산업자금이 2000년 6월15일 남북頂上회담 전후하여 對北 비밀송금된 의혹
2. 2000년 5월 현대건설이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 1억5000만 달러를 송금하는 등 남북 頂上회담 前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 주도로 각 계열사별로 모금한 5억5000만 달러 對北 비밀송금 의혹
3. 2000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 현대전자 영국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매각대금 등 1억5000만 달러 對北 송금 의혹
4. 제1호 내지 제3호의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국가정보원·금융감독원 등의 비리 의혹>
특검팀이 최종발표한 수사결과는 「남북 頂上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4억5000만 달러가 건너갔고, 현물지급 代價로 5000만 달러가 건네졌다」였다. 5억 달러 중 1억 달러는 정부가 남북 頂上회담 代價로 지급키로 한 것이었다.
특검팀의 수사결과는 정상회담 이전에 한정돼 있었다. 시간이 필요했던 특검팀은 청와대에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盧武鉉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한나라당은 6월 再특검법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통과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