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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개탄 할 한국의 신흥종교

by 해찬솔의 신학 2020. 6. 15.

                                                           개탄 할 한국의 신흥종교

                                                                                                                             옮긴이 : 김한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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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모악산(母岳山)은 충청남도에 있는 계룡산(鷄龍山) 버금가는 신흥종교의 발생지요 온상지이다. 이강오의 한국신흥종교총람(韓國新興宗敎總攬)에 따르면, 계룡산에 있는 신흥 교단은 한국의 신흥종교를 13계통으로 분류할 때 30여 교단 정도이지만 신계계(晨鷄系)와 외래계(外來系)를 제외한 11계통이 골고루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전라북도 모악산과 김제시 금산면, 정읍군 일부 지역에 있는 교단은 약 40개 교단으로 오히려 계룡산보다 더 많다. 일제의 통계를 보아도 전국 67개 교단 가운데 충청남도에 8, 전라북도에 11개 교단이 있었다. 이로 미루어 모악산 일대는 한국 신흥종교의 온상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모악산 일대는 이곳에서 발생한 증산교계(甑山敎系) 일색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모악산과 계룡산에 신흥종교가 모여드는 이유는 도참설(圖讖說)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도참서인 정감록비결(鄭鑑錄秘訣)에 따르면, 앞으로 계룡산에 조선 왕조를 대신할 새로운 정씨(鄭氏) 왕조가 열린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모악산 일대 교단은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모악산 일대 대부분의 집단이 계룡산을 아버지 산, 모악산을 어머니 산이라 보고, 계룡산과 모악산이 음양력(陰陽力)으로 대응된다는 여긴다.

 

즉 선천(先天) 세계는 양()의 세계이고, 후천(後天) 세계는 음()의 세계인데, 양의 세계는 이미 지났고, 현재는 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계룡산의 기운이 지나고 모악산의 기운이 돌아왔다고 보기 때문에 모악산에서 교단을 만드는 것이다.

 

남학(南學)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경계에서 발생하여 현재 전라북도에 65, 충청남도에 65, 서울과 경기도에 90개 교단이 있다. 특히 서울은 76개 교단이 있어 한국에서 신흥종교가 가장 성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여 서울에 본부를 설치한 경우이다.

 

우리나라의 신흥종교는 총 303개이며, 이 가운데 약 40%135개가 서울·부산·대구·대전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이처럼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서울은 인구가 가장 많고 행정상 으뜸가는 중심지로 포교가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전은 계룡산에 얽힌 도참설이 성한 지역적 특성이 작용했으리라고 여겨진다. 대구는 광복 후 많은 불교 종파가 발생한 곳이며, 특히 중국계인 일관도와 일련정종이 하나의 교단으로서 면모를 갖춘 데 원인이 잇는 듯하다. 부산의 신흥종교는 대부분 봉남계와 일본계로, 일본과 거리가 가깝고 일본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리적 이유 때문에 일본계의 포교가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라북도 신흥종교의 분류]

 

전라북도 지역의 신흥종교 비중은 1970년 말 12계통의 발생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2계통 가운데 가장 교단이 많은 증교산계를 비롯하여 불교계·남학계·무속계·연합계 등이 모두 전라북도 지역에 시원을 두고 있으며, 수운계는 경주에서 시작되었으나 교세는 전라북도 지역이 압도적이어서 동학농민운동의 시원이 되었고, 동학농민운동 이후에도 전라북도 지역 교단에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증산교계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신도 수가 약 200만 명이라고 호언하던 증산교계의 보천교가 전라북도 지역에 퍼졌다. 각 교단 본부의 지역적 분포를 보아도 지방에 교세를 가지고 있는 종단들이 편의상 서울에 본부를 두고 교단을 유지하고 있거나 다른 지역으로 본부를 옮겨 간 것들을 제외하여도 전라북도의 신흥종교 교세가 전국적으로 두드러진다.

 

 

[증산교계 교단]

 

1. 교단의 발생과 강일순의 구도 생활

 

1894(고종 31) 전라북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이 당시의 사회 불안과 정치 부패를 제거하여 후천 지상 천국(後天地上天國)을 열겠다고 하였으나 실패한 뒤, 동학(東學)과 마찬가지로 후천 선계 개벽(後天仙界開闢)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종교 단체가 발생하였다.

 

1901(고종 38) 고부 유생 강일순(姜一淳)이 김제시 모악산(母岳山) 밑에서 창도한 흠치교 또는 태을교(太乙敎)가 그것이다. 교주 강일순의 도호(道號)가 증산(甑山)이기 때문에 이를 교조로 하는 종단을 증산교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일순은 1871(고종 8) 전라북도 고부군 답내면[지금의 정읍시 이평면]에서 태어났다. 젊어서부터 종교 문제에 남달리 큰 관심을 가지고 구도하였고, 적극적인 구도 생활을 하게 된 동기는 당시 신흥종교로 등장한 동학에 입교하여 주송(呪誦) 수도의 신비를 체험하고, 또 후천 개벽을 표방하는 동학의 이상이 정치적 혁명 운동으로 발전한 위력을 체험한 뒤부터였다.

 

강일순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여 공주까지 종군하면서 승패의 정황을 목격한 뒤 스스로 동학에 견줄 만한 대도(大道)를 창설하여 보겠다는 뜻을 세웠다. 남학(南學서학(西學) 등 여러 종교 단체를 돌아보고 유불선(儒佛仙)의 교의와 음양·풍수·의술·도술에 이르기까지 두루 탐구하면서 각처의 도인들을 찾아다녔다.

 

증산은 당시와 같은 혼란한 세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기성 종교나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신명의 힘을 빌리는 도술 조화(道術造化)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동학에서 주장하는 도술 조화를 더욱더 신도적(神道的)인 면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

 

증산은 27세에 구도할 뜻을 품고 입도해 돌아다니다가 충청남도 비인 사람 김경신(金京新)에게 얻은 태을교와 연산에서 남학의 지도자 김일부에게서 들은 정역(正易)의 이론을 체계화하여 새로운 종교의 창시 이념의 바탕으로 삼았다. 구도를 위해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 돌아온 강일순은 1901(고종 38) 7월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서 기도 수련을 하게 되었는데, 수도를 시작한 지 9일 만에 크게 깨우쳐 자신이 신명계(神明界)와 인간계(人間界)를 통솔하고 천지 운도(天地運度)를 뜯어 후천 선계를 개벽할 상제(上帝)의 권능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후 증산은 자신이 구천 상제(九天上帝)로 있다가 말세에 직면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지상에 내려왔는데, 특히 한국의 운수가 매우 위급하여 이 땅에서 운도를 고치는 천지 공사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증산교의 대순경전(大巡經典)을 보면, 증산이 도통한 뒤에는 신명(神明)들을 구사(驅使)하여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하였으며, 떠오르는 해도 손을 들어 못 떠오르게 할 수 있었고 죽은 사람도 살려 내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신권(神權)을 신도에게 주면 그 신도가 신통하여 불가사의한 조화를 행할 수 있었다. 신도들은 그가 지도하는 주문을 외우면 모든 병이 낫고 도통하여 능히 신권을 행할 수 있었고, 강일순이 후천 선계를 개벽하는 천지 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자 최제우(崔濟愚)의 도력으로 후천 지상 천국이 될 것으로 믿었다가 실망한 동학교도와 병자들이 모여들어 증산을 교주로 하는 새로운 교단이 형성되었다.

 

2. 증산교의 중심 교리

 

증산교의 교리는 교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중심 교리는 강증산의 천지 공사이다. 증산의 천지 공사는 크게 운도 공사, 신도(神道) 공사, 인도(人道) 공사로 나눈다.

 

1)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는 운도 공사

 

운도 공사에는 선천 세계와 후천 세계를 논하는 세운(世運) 공사와 말세의 재액(災厄)을 논하는 지운(地運) 공사가 있다. 강증산이 하늘과 땅을 뜯어 고친다는 말은 상제의 권능으로 천지의 운도를 고친다는 뜻이다.

 

운도설은 동양의 교역에 의한 음양 상수(象數)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에는 필연적으로 변이하고 교역되는 원리가 있고, 그 원리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이 예정된 도수(度數)에는 선천 세계와 후천 세계가 있는데 선천 세계가 교역되는 시기가 말세이다. 이 말세의 운도를 잘 조정해서 후천 지상 선계를 개벽하기 위하여 자신이 무극 대도(無極 大道)를 편다는 것이다.

 

증산은 의세 제민(醫世濟民)하는 도법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액운(厄運) 공사이다. 이 무극 대도는 과거의 종교와 같이 어느 일면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동학·서학·남학·유불선·무축(巫祝음양·풍수·도참·지리·의학·복술(卜術)의 진수를 뽑아 융섭하는 전체적이며 종합적인 무상 대도를 편다고 하였다. 이것이 교운(敎運) 공사이다.

 

선후천세운(先後天世運)은 동학교주 최수운이 말한 오만 년 선천 선계의 개벽이나 남학의 김일부가 제창한 정역의 이론과 큰 차이가 없다. 말세의 재액도 최수운이 괴질 운수를 말한 바 있듯이, 증산은 장차 전라북도 군산에서 이름 모르는 괴질이 발생하여 한국은 물론 세계의 전 인류를 순식간에 위협하게 된다고 하면서, 자신은 이때 사용할 24종 약방문과 부적, 그리고 의통인패(醫統印牌)까지 전수받았다고 하였다.

 

또한 증산이 제시한 수련 공부를 하면 병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인간이면서 신성의 몸이 되는 이른바 신화(神化)의 경지에 이르고 장생불사하는 의통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무극 대도는 동학이나 남학에서도 주장하는 것이다. 구천 상제로 세상에 내려온 증산이 곧 최수운의 재생이며, 예수의 재림이며, 미륵불의 출세라고 하여 동서양의 종교를 합일하였다고도 하고, 때로는 유교의 행동 범절과 선도의 조화와 불교의 형체를 갖추었다고 하여 삼교(三敎) 합일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 민족의 전래적인 무속 신앙과 풍수 도참 신앙이 전체 교리의 바탕이 되며, 증산의 처소이자 포교소였던 곳에는 약장(藥欌)을 두고 약방(藥房)이라고 하여 의세(醫世)의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

 

증산은 세계의 각 민족 사이에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고 분쟁이 계속되는 원인을 각 지방의 지운(地運)이 통일되지 못한 채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계룡산 운수 등 비결로써 명당 기운을 조정하여 지운의 통일 공사를 본다고 하였다.

 

순창 회문산(回文山)에 오선위기(五仙圍碁)라는 대명당이 있는데, 이 명당은 한국에서 동서양이 바둑 싸움을 하는 형국이므로 이 명당의 형국에 한국의 지운을 짜 맞추어 앞으로 한국이 세계를 지배할 종주국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였다. 또한 금강산 12000봉의 지운에 맞추어 한국에서 12000의 도덕군자가 나올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2) 신명계의 불안을 해소하는 신도 공사

 

신도 공사에는 신명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해원(解寃) 공사, 신명의 배치, 신명의 통일이 있다. 증산은 이 세계는 신명계와 인간계가 상대적으로 양립하여 정상이 상추 상응(相推相應)하는 연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현재 인간관계에 불안이 충만한 것은 곧 신명계에 불안이 충만하여 그것이 그대로 인간계에 나타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인간계의 불안을 해소시키려면 먼저 신명계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불안은 원한에서 싹튼 것이라 보기 때문에 신명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해원 공사를 하는 것이다. 이 신명의 해원은 원래 무당들의 중심 과업이므로 증산이 신명의 해원을 하는 양식도 무당이 해원굿을 하는 것과 같다.

 

신명의 해원은 증산교 4대 교강 가운데 하나로, 증산이 천지 공사라는 이름으로 행한 교단의 종교적 교설과 행위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또 중요하게 여긴다. 4대 교강은 해원, 보은, 상생, 대동단결인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신명이나 인간이 품고 있는 원한을 풀어 주면 상호간에 정의가 따르게 될 뿐만 아니라 원을 풀어 준 자에 대한 보은이 따른다.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어질고 의롭다. 따라서 인의가 있는 곳에 상극 투쟁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상생만 있게 된다. 상생의 의로써 상호 부조하는 세계는 대동단결이 되어 평화로운 사회가 이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동단결은 신명계에서도 이루어지게 된다. 구천 상제가 각 지방의 민족신(民族神)[단군과 같은 신명], 문명신(文明神)[예수, 공자와 같은 신명], 조상신들을 통합하여 통일 신단(神團)을 조직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구천 상제, 즉 증산은 통일 신단의 의장이 되어 신단의 의결에 따라서 천지 공사를 하게 되며, 필요에 따라 동서양의 신명 지도자를 교환 배치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3) 인간들의 심신을 수련하는 인도 공사

 

인도 공사는 말세 운도에 처해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심신을 수련하여 후천 선계에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는 공사이다. 즉 수련 공부를 하는 최후의 목적은 신화와 도통에 있다. 신화는 사람이 신명과 동화하여 그대로 신명이 되는 현상이다. 도통은 영이 밝아져서 혜식(慧識)이 열리고[通靈], 신명을 보는 눈이 열리고, 신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신명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천지 공사는 광제창생(廣濟蒼生), 보국안민(輔國安民), 화민정세(化民靖世)3대 목적 아래에 시행된다. 증산의 천지 공사는 증산이 말한 것이나 행동한 것이 모두 천지 공사가 아닌 것이 없다고 본다.

 

증산교에서는 증산이 제자들과 더불어 말하고 행동한 것이 모두 천지 공사를 한 것이라고 본다. 지상에서 인간이 하는 일이란 천상에서 신명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이며, 또한 현재 증산이 하는 일은 앞일을 미리 정하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증산이 한국의 정권을 얼마 동안 외국에 맡기는 공사를 하는데, 제자들에게 문답해서 36년간 일본인에게 위탁하는 도수를 짰으며, 장차 있을 원자탄의 피해를 방지하는 공사도 하였다고 한다.

 

증산은 수시로 종이에 이상한 글귀나 부적을 써서 불살랐다. 1909년에는 종이에 포교오십년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이라는 글을 써서 불살랐다. 증산교도들은 이것이 모두 천지 공사의 내용이었다고 믿고 있다. 즉 증산의 이 같은 행위를 선천의 종말과 후천이 개벽되는 시한을 결정한 공사라고 여겼다.

 

3. 증산교계의 형성

 

강일순은 포교를 시작한 지 9년째인 1909(순종 3) 6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강일순의 죽음은 교주를 불사신으로 믿고 교주의 신권으로 후천 개벽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던 신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신도들은 교주의 사술에 속았다는 생각을 품고 하나둘 교단을 떠나 흩어졌다.

 

1911년 증산의 제2부인 고씨에게 증산의 영()이 접하여 천지 공사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흩어졌던 교인들이 모여들어, 1914년 태을교라는 이름의 교단을 형성하였다. 태을교는 증산교계 교단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교단으로, 잠시지만 성공적으로 포교할 수 있었던 전례는 그 후 증산교계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태을교 이후 증산의 혈연 직제자와 간접 제자들이 만든 교단이 광복 전에 약 40개 파가 있었고, 광복 직후에는 더욱 늘어나 한때는 약 80개 파를 헤아렸다. 이처럼 많은 교파가 분립하게 된 것은 증산이 여러 종교의 교리를 발췌 통섭하여 교리로 삼은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이며, 교통(敎統) 전수와 교권 싸움 등 때문이었다.

 

교리 면에서 볼 때에 증산이 생전에 자신은 구천 상제의 화신이며, 최수운의 재생이며, 예수의 재림이며, 미륵불의 출세라고 하였기 때문에, 사후에 증산을 구천 상제로 신봉하는 교파와 미륵불로 신봉하는 교파가 생긴 것이다. 또 증산교의 교리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유교에 치중하는 신앙, 불교에 치중하는 신앙, 동학에 치중하는 신앙 등이 갈라서게 된 것이다.

 

교통 전수에 대한 주장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사제 간의 인연, 혈연과 가족적 인연, 영적 전수와 물증적 전수가 그것이다. 사제 간의 전수에는 증산이 천지 공사를 할 때 24절후에 맞추어 24제자를 두고 공사에 참여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들 24제자는 대개 자파의 교단을 만들었다. 이들 가운데는 증산이 교통을 전수한다는 뜻으로 대나무 아홉 마디를 끊어 하나씩 나누어 준 9인의 제자가 포함되어 있다.

 

혈연과 가족 관계를 주로 하는 교단은 증산의 딸인 강순임(姜舜任)이 만든 교단과 증산의 부인 고씨가 만든 교단, 증산의 셋째 부인을 신봉하는 교단이 있다. 증산의 직제자가 아니면서 교단을 세울 때에는 증산의 성령이 자기에게 내렸다고 주장하거나 증산의 가족과 관계를 맺기도 하였으며, 또 증산의 유물이나 유해 등으로 교통 전수의 증거로 삼았다.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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