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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2000년 남북 공동선언문 발표일을 "국가 기념일"로,정한다구?

by 해찬솔의 신학 2007. 11. 21.
6·15기념일’ 제정은 어불성설이다
임기 말 노무현 정부가 2000년 남북공동선언문 발표일인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14일 ‘6·15공동선언 기념일’ 제정에 관한 공고 제2007-53호를 밝히고 12월3일 공청회를 열기로 한 게 바로 그것이다. 이는 노 정부가 남북관계에 또 하나의 대못질을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본래 기념일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공감하는 사건 내지 사안에 대해 제정하는 것이다. 또 이미 완료된 특정의 사건이 국가 차원에서 계속 기념할 가치가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존재할 때만이 채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6·15선언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갈려 있다.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화해·협력의 토대를 마련한 ‘민족통일선언’이라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북한의 통일전략이 가동되는 길을 열어준 ‘민족반역선언’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더욱이 6·15선언 채택과 그 이행은 현재 진행중인 사건이다. 아직 이 선언의 공과를 평가하기엔 이르다.

법리적으로나 형평성의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특정한 합의문을 기념한 적이 없다. 현재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0045호) 별표에서는 모두 40개의 기념일을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느 특정의 조약 채택일은 포함돼 있지 않다. 노 정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채택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2003년 10월1일 한미동맹 50주년이던 날 공식적인 기념행사도 거행하지 않았다. 그런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일은 기념하지 않으면서 왜 6·15선언 채택일만 기념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6·15기념일 채택의 부당성은 6·15선언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그동안 북한은 6·15선언 제2항이 ‘련방련합제통일방안’ 곧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의 절충적 통일을 담고 있으며(2002년 평양출판사 간 ‘김정일장군 조국통일론 연구’ 참조), 따라서 “6·15 북남공동선언은 북과 남이 련방제통일을 지향해 나갈 것을 밝힌 문서”라고 주장해 왔다(2002년 2월5일자 ‘민족자주통일은 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이란 평양방송 논설 등). 이처럼 ‘낮은 단계 연방(혹은 연방연합제) → 높은 단계 연방’이란 북한식 연방제 통일의 경로가 구현돼 있는 6·15선언의 채택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할 경우,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6·15선언은 당면한 최대의 안보위협 요소인 북한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들에겐 자유를 주었지만, 국군포로·납북자의 불법 억류와 인권 탄압 등 분단 고통은 여전히 방치하는 문서로 남아 있다. 작금 북한은 6·15선언을 ‘우리민족끼리’ 민족공조노선, 냉전수구 - 반통일세력 척결노선을 선전·선동하는 외에도, 정체불명의 한반도기를 앞세워 친북반미의 남북 공동행사를 거행하는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6·15기념일 제정은 북한의 정치문건인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주장해온 부당한 요구에 우리가 줏대 없이 굴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정치선언에 불과한 10·4 남북정상선언(1항)과 그 후속조치인 11·16 남북총리회담 합의문(제1조 1항)에 근거해 6·15기념일을 제정하려는 시도는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하겠다. 국가 차원의 6·15기념일 채택이 부적절하다면, 정부는 하루빨리 남북간의 잘못된 약속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민간단체가 하고 싶으면 자율적으로 ‘기념행사’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타당하다. 차제에 정부는 6·15기념일 대신 ‘북한 인권의 날’ 제정을 적극 고려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