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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료·논문

칼 맑스 사상

by 해찬솔의 신학 201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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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맑스 사상     

 

                                                                                                                                                                        : 김한영 목사 

 

 

칼 맑스는 1818년 독일의 트리어지방에서 태어나 베를린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벨기에, 영국으로 망명을 다니면서 진보적인 학술, 언론, 정치활동을 벌이다 1883년 영국의 런던에서 생을 마친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사상은 흔히 말하듯이 19세기 독일의 철학, 프랑스의 정치학, 영국의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 있으나, 이 세가지 요소들을 하나로 엮고 있는 핵심적인 사상은 철학사상이었으며, 이 사상은 변증법적, 유물론적 실천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1.맑스의 사상체계에 대한 개관

 

그는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 인간과 역사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상호규제한다는 것을 배웠고,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통해서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물질적, 실천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사상에 입각해서 프랑스의 정치사상, 특히 사회주의사상을 비판적으로 섭취하였다. 프르동을 비롯한 프랑스의 사회주의사상가들에 대한 맑스의 비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사상이나 정치운동을 포함하는 모든 사상이나 정치현상들은 인간들의 머리나 마음 속의 의지 또는 소망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물질적, 실천적 존재에서부터 연원하는 현상이라는 비판이었다. 어떤 시대에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상이나 정치운동이 생겨나는 것은 우연한 일이거나 어떤 천재적인 정치사상가가 나타나서가 아니라 그 시대에 그와 같은 사상과 운동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물질적, 실천적 존재조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맑스가 영국의 여러 선진적인 학문분야 가운데에서도 당시 정치경제학이라 불리던 경제학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이와같은 그의 유물론사상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사회의 사상과 정치, 그리고 그것들의 변화는 그 사회의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들에 지나지 않으며, 그 현상들의 이면 또는 밑바탕에는 그런 현상들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사회의 물질적, 실천적 존재조건이 형성,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존재조건이야말로 인간사회의 비밀을 풀어주는 해부학, 즉 열쇠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다루는 학문분야인 경제학에 몰두하게 되었다. 30대 초반에 연구를 시작해서 거의 20년에 걸쳐 1권을 완성한 ?자본론?은 바로 그와 같은 철학사상에 기초를 둔 대표작이었다. 이 저작을 통해 그가 규명하려 했던 것은 현대사회의 물질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 생산원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이러한 원리가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가 내리는 결론은 자본주의사회가 자본-임금노동 사이의 모순적 관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의 자기모순들 때문에 스스로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질서인 사회주의사회를 태동시켜 나가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물론적 철학사상과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하고 있는 이와같은 맑스의 사상체계에는 그 이면에 인간해방이라는 실천적인 관심이 가로 놓여 있었다. 인간해방에 대한 실천적인 관심은 특히 20대 청년기의 맑스에게서 강하게 표출되었으나, 20대 후반부터는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형태로 잠복해 버린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그가 이 무렵부터 철학적 사고를 중단하고 과학적 사고로 사고의 전환을 꾀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해방을 이루는 길이 구체적으로 사회주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해방을 추상적인 차원에서 논하는 대신, 인간해방을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사회주의를 추구했으며, 그것도 단지 정치적인 소망을 피력하는 방식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거기서 얻어진 과학적 지식을 실천활동에 적용하려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의 오랜 동지였던 엥겔스는 종래의 사회주의사상들이 과학에 기초를 두지 않은 공상적인 사회주의였으나 맑스의 사회주의사상은 과학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에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맑스의 사상체계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들을 개관해 보았는데,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이론적인 부분과 실천적인 부분이 서로 뒤엉켜 한 덩어리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변증법적-역사적 유물론과 자본주의사회론, 인간해방사상과 사회주의사상이 한데 어울려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러한 내용들을 좀더 자세히 알아 보기로 하겠다. 그의 철학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의 인간관과 역사관을 살펴 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나서 그의 인간해방사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외론과 이데올로기론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사상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이와같이 맑스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검토해 본 다음에 우리는 끝으로 그의 사상이 후세에 미친 영향, 그리고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그의 사상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2.맑스의 인간관과 역사관

 

맑스는 인간을 언어와 사고능력 등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동물로 보았다. 이같은 인간관은 색다를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인간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는 점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챨스 다원의 진화론으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은 그는 우선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믿지 않았을 뿐아니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의 성질들이 오랜 세월동안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후천적으로 생겨난 것들이라고 파악했다. 특히 언어와 사고능력 등 인간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도 장구한 세월동안 무리를 짓고 동물들처럼 자연과 싸움하는 가운데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보았다. 언어와 사고능력 등 소위 인간적인 것들은 바꾸어서 말하자면, 인간들의 물질적인 삶에서부터 파생되어 나온 성질의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같은 관점은 인간이 나면서부터 그런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관점, 그리고 바로 그런 능력이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고 나아가서는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는 관점과 대립 또는 반대되는 관점이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는 맑스의 유명한 명제는 역사적, 유물론적 인간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으며, 동시에 비역사적이거나 관념론적인 인간관에 대한 정면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명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훨씬 더 많다. 이 명제는 인간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 역사관, 그리고 과학론, 이데올로기론 등에도 일관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그는 이 명제를 사회분석방법에 적용시켜 사회를 고찰함에 있어서는 우선 그 사회를 크게 두 차원으로, 즉 물질적 토대와 상부구조로 나누어서 고찰해야 하며, 이 두 차원은 전자가 후자를 규정하는 관계 속에 놓여있다고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의 역사는 정치나 사상 등의 변천사는 인류생활의 표면 위에 떠오른 피상적인 역사의 부분에 불과하며, 그 밑에서 이루어진 물질생활의 변천이 진정한 역사였으며, 이것이 표면 위의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러한 인간관, 사회관, 역사관에 입각한 탐구와 고찰만이 과학적인 것이라고 보았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특히 관념론적이거나 비역사적인 관점에 입각한 탐구와 고찰은 본말이 전도된 비현실적인 뜬 구름잡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다.

어쨌든 맑스의 인간관에는 이와같은 유물론적 관점이 근저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의 유물론적 관점은 흔히 철학적 유물론, 인간학적 유물론이라 불리는 포이에르바하식의 유물론과 크게 두가지 점에서 구별된다는 사실이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와는 달리 인간을 초역사적이고 고립된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역사적, 동태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시각에서 파악했다. 인간의 물질적 존재상태는 역사적 변화를 겪지 않는, 정체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교류관계 속에서 계속 변화하고 활동하는 상태인 것이며, 인간의 물질적 존재는 로빈손 크루소와 같은 고립상태에서가 아니라 다른 인간들과의 무리지음과 상호교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이란 이런 의미에서 그냥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으로 다른 인간들에 의해 변형되고 우리에게 물려진 역사적 유산이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모두 같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그 시대, 그 사회의 환경에 의해 조건지워진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들의 성품이나 의식구조는 물론 그들의 삶 자체도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조성되는 것이며, 인간사회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도 대부분 어떤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았다. 이와같은 문제들 가운데 그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주목하고 개탄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 그리고 그것에 따른 계급적 갈등과 투쟁이었다. 맑스의 실천적인 관심은 이와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표저작인 경제학, 철학 수고」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선언」 「자본론등을 통해서 그러한 문제들을 야기시키는 역사적,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 내려 하였다. 그는 문제의 원인이 역사적, 사회적인 것인 한, 즉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에 합당한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3.인간소외와 이데올로기

 

맑스가 이와같은 사상을 최초로 명료하게 드러낸 것은 빈익빈부익부라는 유명한 명제를 담고있는 경제학, 철학 수고의 소외론, 노동의 소외라는 글이었다. 여기서 그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를 소외라는 개념으로 지칭하면서, 이같은 소외가 발생하는 원인을 규명하고 소외로부터 인간이 해방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는 인간소외현상을 빚어내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사유재산제도에 있다고 보았다. 사유재산제도는 노동하는 인간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노동의 산물을 다른 사람이 앗아가 버리게 함으로써 소외를 빚어내며, 노동산물로부터의 소외는 노동이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닌 것이 되게 함으로써 다른 한가지 형태의 소외, 즉 생산활동 자체로부터의 소외를 파생시킨다고 보았다. 이러한 소외는 또 인간들이 서로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이용하는 수단적인 인간관계를 갖도록 함으로써 다른 인간들로부터의 소외도 파생시키며, 나아가서는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인간 본연의 유적 본질로부터도 소외되게 만든다고 하였다. 맑스는 이와같은 4가지 형태의 소외가 인간들이 만들어낸 사유재산제도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따라서 소외로부터의 인간해방은 사유재산제도를 철폐함으로써 이루어 진다고 보았다.

맑스의 이와같은 소외관념은 종교론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며, 그 후의 저작들에서도 계속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신이라는 존재를 포이에르바하와 마찬 가지로 인간의 창조물이라고 이해한다. 신이란 인간들이 현실적인 삶을 영위해 가는 가운데 겪게 되는 고통과 좌절이 빚어낸 염원과 이상, 그리고 위안에 불과하다. 이처럼 신이란 소외된 현실생활 속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적 창조물에 불과한데, 인간들은 오히려 신이 자신들을 창조한 것이라 믿어 신과 인간의 관계를 뒤집어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인간들은 신을 경배하고 신부와 같은 특수신분층의 인간들이 자신들과 신을 연결시켜주는 중개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음으로써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지배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현실적인 삶 속에서의 문제를 현실 속에서 해결하려 들지 않고 상상의 세계 속에서 위안을 찾거나 해결하려 들기 때문에, 맑스는 이런 상황을 빗대어 종교를 아편이라 비유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맑스의 소외관념이란 인간이 자신의 창조물에 의해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모습, 즉 주인과 객 사이의 관계가 전도된 것을 가리킨다. 맑스는 이같은 소외현상이 종교영역에서 뿐아니라 일체의 사상과 의식, 그리고 물자생산의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았다. 전자에 관한 논의는 주로 독일 이데올로기, 후자에 관한 논의는 주로 자본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논의는 존재와 의식 또는 존재와 사상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합당한가 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라는 명제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그 시대에 지배적인 계급의 사상이다라는 명제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맑스는 전자가 후자를 창조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마치 신이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삶에 대해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치와 마찬 가지로 인간들의 의식이나 사상도 인간들의 물질적인 존재 또는 삶에 의해 만들어 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존재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이 인간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착각하듯이 의식이나 사상이 인간들의 존재 또는 현실적인 삶을 규정해 나가고 인류의 역사도 의식, 사상 등의 관념적인 것이 이끌어 왔다는 식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착각과 전도된 사고를 맑스는 이데올로기라 불렀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조차도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 형성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분업의 발달 때문이었다. 그는 사유재산제도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이 분업의 발달에 의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보았다. 분업은 인간들이 각자 한가지 일만 하게 함으로써 인간들을 전인격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일면적, 기형적으로 발달하게 만들 뿐아니라 국가와 계급의 발생, 사적인 이익과 공적인 이익 사이의 분리와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그리고 이데올로기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이데올로기는 분업 가운데에서도 정신노동과 물질노동사이의 분업이 이루어졌을 때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사상이나 의식을 만들어내는 정신노동이 분업에 의해 물질노동과 분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순간부터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인간들이 현실적인 삶으로부터 동떨어진 순수한 공상에 빠져 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맑스에게서 이데올로기란 사태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뒤집어서 파악하도록 오도함으로써 문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하는데 장애요인이 되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의 하나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맑스가 이러한 이데올로기조차도 어떤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의해, 정신노동과 물질노동 사이의 분업이라는 조건에 의해 생겨난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데올로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자라나는 토양 그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런 의미에서 맑스의 사상은 뿌리를 건드린다는 뜻을 지닌 래디칼한 사상, 즉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사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면 이데올로기를 자라나게 만드는 토양은 무엇인가. 맑스에게서 그것은 우선 분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업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같은 분업철폐주장은 실현이 불가능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상적인 주장이라고 비판을 받아 오기도 했다. 이 점은 청년기의 맑스가 드러낸 미숙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진정 문제로 삼은 것은 분업 그 자체가 아니라 무계획적이고 자연발생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분업, 그래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립화하고 고착화되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지배하는 그런 형태의 분업이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사실상 자연발생적이고 인간들의 통제를 벗어난 형태의 분업을 철폐하고 의식적, 계획적인 분업으로 대신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4.자본주의와 인간소외

 

한편, 우리가 지금까지 이데올로기론을 통해 살펴본 맑스의 소외관념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자본론에서도 핵심적인 관념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노동의 소외라는 글에서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로 서술된 소외현상이 여기서는 매우 체계적인 방식으로, 경제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들을 통해 서술되고 설명된다. 여기서의 핵심개념은 자본이라는 것이다. 자본이란 본래 인간들이 노동을 통해 만들어낸 물건에 불과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는 어떤 신비로운 속성을 가리킨다. 맑스는 이와같은 물건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주객전도의 관계라고 보았으며, 곧잘 신과 인간 사이의 전도된 관계에 비유하였다. 종교를 통해 인간들이 자신의 머리로 만들어낸 신에게 지배당하듯이, 이번에는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물건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 물건에 신성이 붙어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물건을 숭배하기 때문에 이를 물신숭배에 비유하였으며, 오늘날의 사회를 이러한 자본과 물신숭배가 지배하는 사회, 즉 자본주의사회라 특징지었다.

그러면, 자본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는가.

자본론에서의 논의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오늘날의 사회생활에서 물질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경제의 구조, 즉 자본주의경제의 기본구조를 해명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구조가 경제생활과 사회 전반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 또는 발전시켜 나가는가를 해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서의 결론은 자본주의사회는 새로운 단계의 경제질서인 사회주의적 생산형태를 만들어내는 과도기의 사회로서 자기자신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해체시켜 나가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으며, 서론은 자본이 갖는 신비로운 속성은 상품생산 및 교환, 그리고 생산수단과 생산자 사이의 분리라는 역사적,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었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이라는 것에 대한 해부학을 통해 맑스가 밝혀내는 자본의 성질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본은 돈 또는 화폐이지만, 단순한 돈 또는 화폐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활용되는 돈이다. 그리고 돈 또는 화폐란 명목상의 가치만 지니는 형태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그 원형은 상품의 하나로서 상품교환 등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특별한 상품, 즉 화폐기능을 담당한 상품이었다. 조개껍질, 가축, 광목, , , 동 등이 그러한 화폐상품의 예들이다. 그러면 또 상품이란 무엇인가. 상품은 인간들이 노동을 통해 만들어낸 물건이지만,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고 파는 물건, 또는 직접 물물교환을 통해 거래되는 물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모든 물건이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며, 상품이란 단순한 물건과는 달리 교환가치라는 것, 즉 교환되는 가치를 갖는 물건이다. 공기나 햇빛 같은 것은 그 자체가 인간의 삶에 대해 일정한 효용성(이것을 맑스는 사용가치라 불렀다)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한, 상품으로 교환할 필요가 없으며, 교환되지 않기 때문에 교환가치, 즉 교환되는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맑스는 이와같은 교환가치, 물건 그 자체에는 들어있지 않으나 상품으로 교환될 때 나타나는 이 교환가치가 발전하여 결국은 화폐와 자본의 신비로운 속성을 이루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교환가치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것의 신비로운 성격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가.

맑스는 이러한 교환가치의 정체가 인간들의 노동, 그리고 이러한 노동의 결과를 인간들이 서로 교환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교환가치의 많고 적음을 정해주는 것은 교환되는 어떤 물건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데 요구되는 인간의 노고, 즉 노동의 양이 많으냐 적으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의 노동가치설인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노동이 가치를 구성하고 가치로 환산되는 일은 초역사적, 초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시대, 즉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산물을 서로 교환하고 그러한 교환을 목적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시대에 이르러서야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는 교환가치가 상품을 교환하고 생산하는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바탕으로 생겨난 역사적, 사회적 현상으로서 이러한 인간관계의 표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떤 상품이나 화폐가 지니는 교환가치가 이러한 인간관계의 표현이라는 점을 간파하지 못한 채, 상품이나 화폐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신비로운 힘이라고 착각하여 상품교환의 원리와 화폐가 발휘하는 위력에 지배당한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인간들 상호간의 사회적 관계는 잊혀지고 그 대신 돈과 화폐가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로 치부를 위해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경우를 들 수 있는데, 맑스는 자본주의사회가 바로 이러한 전도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았다.

자본이란 앞서 살펴보았듯이 돈을 벌기 위해 사용되는 돈, 부의 증식을 위해 생산에 투입되는 돈을 가리키며, 자본주의사회란 이와같은 자본이 생산을 주도하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자본가가 생산과 유통 등의 상업활동을 하는 목적은 이러한 부의 증식과 이윤추구에 있으며, 이윤이 생기지 않는 한 자본주의적 기업과 생산, 그리고 자본은 더이상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자본주의사회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겨나는가. 맑스는 이것이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에서 생겨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를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하고, 이 상품을 판매한 대금 가운데 일부는 노동자에게 생계유지에 필요한 임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일부는 생산에 재투자하거나 이윤으로 남긴다. 맑스는 이 이윤은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추가로 만들어낸 교환가치로서 자신의 임금액수만큼을 제하고 남은 부분, 즉 노동자가 만들어낸 부분이지만 자본가가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고 남긴 부분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볼 때 이윤은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액수를 초과하는 잉여노동을 제공한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이 이윤은 다시 자본으로 투입됨으로써 결국 노동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자본의 지휘와 명령에 따라 일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은 주객전도현상은 이미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언급된 바와 같은 노동의 소외와 동일한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자본론에서의 논의는 이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복잡한 내용들이 추가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자본주의 경제가 자본가들끼리의 치열한 경쟁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의 노동보다 기계를 이용해서 생산하는 것이 비용의 면에서나 경쟁의 면에서 유리하고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생산성이 고도로 발달하고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시켜 나감으로써 실업과 궁핍화현상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윤추구를 둘러싼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이해대립과 갈등,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제위기현상 등이 임금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자본주의적 생산형태를 극복하려는 변혁운동을 초래함으로써 사회주의사회를 태동시키는 물질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이다.

 

5.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그러면, 이제 맑스가 추구했던 사회주의사회란 어떤 사회였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이룩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맑스가 추구하던 사회주의사회란 자본론에서 정의하고 있듯이 공동소유의 생산수단으로 일하고 각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노동력이 사회적인 노동력의 하나라고 의식하는 가운데 일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결사체이다. 사회주의사회란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공동체의식을 지닌 가운데 일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결사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사회주의사회가 어떤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사회가 어떤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떤 경제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듯이 맑스가 추구한 사회주의사회란 어떤 경제체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제체제는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지니는 특징들과 대조되는 특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맑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체제는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고, 생산이 개인주의적 목적하에서, 즉 자본가는 영리추구, 노동자는 생계유지라는 목적 하에서 이루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생산에 참여하는 인간들은 물질적인 강제에 의해, 즉 자본가는 맹목적인 부의 축적에 노예가 되어, 노동자의 경우는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의 결핍 때문에 강제로 생산에 참여하게 되며, 자신들의 개인적인 노동력이 사회적인 노동력의 일부라는 점을 의식하지 못한 채 단지 개인적 수단으로서만 발휘하는 개인주의적이고 무계획적인 생산체제라는 특징을 지닌다. 맑스가 추구한 사회주의란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특징들과 대조되는 생산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것은 맑스가 사회주의를 정의하면서 평등을 논하지 않고 자유를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평등민주주의나 공산독재를 이념으로 하는 체제이고, 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체제라고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우선 경제체제와 정치체제는 서로 다른 것이며, 맑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앞서 언급했듯이 강제와 개인주의와 무의식성 또는 무계획성이라고 특징지었다. 많은 이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듯이 자유는 평등에 반대되는 말이 아니라 강제나 속박에 반대되는 말이다. 맑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사유재산제도로 인해 인간들, 특히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물질적인 강제와 속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았으며,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모순들은 인간들을 이러한 강제와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조건을 만들어 간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함께 사유재산제도가 소멸되고 여기에 따른 강제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인간들이 그 다음 단계에서 자유롭게 사회적으로 결합하고 공동체의식에 입각해서 일하는 경제체제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맑스의 주장은 자연스런 귀결의 하나였다.

듣는 사람들에게는 의외일지는 모르겠으나, 평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비판적이었다. 맑스가 자유보다는 평등에 대해 더 비판적이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의 사회주의 사상가나 운동가들이 사회주의를 곧잘 평등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사회주의가 평등이라는 관념이나 가치를 실현시키려는 사상과 운동이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과정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맑스는 유물론자였으며 어디까지나 물질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지 평등이라는 관념이나 가치를 포함하는 의식이 인간들의 물질적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를 변혁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인 불평등과 부자유가 인간들에게 변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러한 현실적인 욕구가 평등이나 자유라는 가치를 소중한 것으로 의식세계에 떠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우기 이와같은 가치는 자본주의사회에 만연해 있는 상품교환의 관행이 의식에 반영되고 관념적으로 표현된 것들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이러한 관념적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맑스에게 주객의 전도로 비쳐질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맑스가 추구했던 사회주의사회란 어떤 정치체제가 아니며,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어떤 관념적 가치나 사상이 실현된 그런 사회도 아니다. 그가 추구했던 사회주의사회란 자본주의사회가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다음 단계의 경제체제였던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한시적으로나 존재하는 체제라고 보았으며, 자기부정의 모순 때문에 사회주의사회로의 이행은 필연적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따금씩 자본주의사회의 사회주의사회로의 이행이 마치 시간문제에 불과한 것처럼 서술하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서술들 때문에 맑스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자본주의체제에 의해 저절로 만들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실제로 맑스가 그렇게까지 숙명론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 내는 것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을 마련하는데 불과하며, 실제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인간들의 의식적인 실천활동, 즉 혁명운동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도 사회주의체제를 이룩하기 위한 실천활동과 혁명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앞서 그의 인간관이나 이데올로기론에서 보았듯이 맑스는 자본주의사회의 인간소외현상도 어떤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조건, 즉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라는 조건이 빚어낸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들을 극복하면, 거기에 따른 소외현상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인간들이 주관적으로 소망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역사를 전혀 새롭게 문자그대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역사적 유산을 테두리로 하여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들이 주어진 역사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또 그것이 허용하지도 않는 역사창조를 도모하는 것은 허황된 꿈으로 그치게 된다고 보았다. 그 반면에 새로운 역사창조의 조건이 성숙한 상황 속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막으려는 인간들의 주관적인 소망 역시 무위로 끝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같은 역사관은 사회주의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실천운동과 혁명사상의 바탕이 되었으며, 사회주의적 혁명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떻게 가능해 지는지에 대한 해부학적 탐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해부학적인 탐구를 통해서 그가 찾아내려고 한 것은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자본주의사회가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게 만드는 모순구조였다.그는 모든 사물은 변화하기 마련이며, 현재는 과거가 부정된 결과이고 미래 또한 현재 속에서 움트는 것이라는 변증법적 사고에 입각해서, 자본주의라는 사회의 현재를 해부함으로써 그것의 미래를 내다보려고 하였다. 그에게서 미래는 현재의 부정이고, 현재는 현재를 긍정하는 측면과 부정하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의 미래를 자본주의사회의 현재 속에 들어있는 부정의 측면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 부정의 측면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들이며,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 이윤추구가 지니는 모순 때문에 생겨나는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계급적 대립과 갈등,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때문에 빚어지는 실업현상과 주기적인 경제위기, 이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와 의식화 및 정치세력화 등이 바로 부정의 측면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의 측면들은 자본주의사회의 미래상을 예견토록 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맑스는 자본주의사회 이후에 사회주의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내다 보았으며, 사회주의사회는 자본주의사회가 충분히 발달하여 자체 내의 모순도 충분히 첨예화되어야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역설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상황을 임산부의 진통에 비유하기도 하였는데, 이 비유를 통해 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사회주의사회가 임산부의 태내에 든 아기처럼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성숙한다는 것 이외에도 출산의 시기는 마음대로 앞당길 수도, 마음대로 연기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맑스는 사회주의사회가 이처럼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자라난 산물이기 때문에, 상당한 부분 자본주의의 유산을 계승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사회주의사회를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주의사회의 초기단계에서는 생산과 분배가 생산과 분배가 계획적, 의식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의 유산이 남아있기 때문에 생산의 계획이나 분배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및 교환의 원리에따라 노동의 양 또는 시간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게 된다고 전망했다. 생산은 결사체 구성원들의 욕구에 따라 필요한 물건의 종류와 양을 계산하고 이것을 다시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할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생산물은 그 사회에서 공통으로 필요한 생산수단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만큼을 공제한 다음, 구성원 개개인들에게 각자 노동한 만큼의 비율대로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사회주의가 발달하여 언젠가 성숙단계에 이르게 되면, 사회구성원들이 골고루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을 분배받는방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의미에서 후대의 맑스주의자들 가운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초기단계만을 사회주의사회라 부르고, 성숙단계를 공산주의사회라고 구별지으면서, 사회주의사회가 공산주의사회로 가는 과도기사회라 성격지우기도 한다.

맑스는 초기단계의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이밖에도 자본주의사회의 유산으로서 계급과 국가가 상당한 기간동안 잔존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초기단계에서는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운동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계급세력을 제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정치적 독재가 과도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찬 가지의 이유 때문에, 즉 혁명운동을 성공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국가가 과도적으로 존속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즉 계급적인 성격의 국가공권력은 성공적인 혁명을 통해 사유재산제도와 계급이 소멸하게 되면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어 고사, 즉 말라 죽게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남는 것은 단지 공동체생활에 필요한 순수행정기능을 담당하는 기구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6.사회주의 혁명과 혁명의 주체

 

맑스의 사회주의 사상은 이상에 본 바와같이 한편으로는 변증법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물론적이다. 모순이라는 개념부터 변증법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맑스는 사회주의사회가 자본주의의 태내에 든 자기부정의 모순에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으며, 아직 태동하지 않은 사회주의의 모습을 자본주의사회의 자기부정적 측면에서 예견해 내려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사회의 초기단계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유산이 잔존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으로 예상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사회주의를 유물론적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사회주의를 어떤 정치체제나 이상적인 관념적 가치로 본 것이 아니라 어떤 물질적인 삶의 방식, 즉 물질적인 생산과 분배가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 사이의 관계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렇게 됨으로써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바로 잡힌 삶의 방식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유물론은 인간을 인간이 아닌 물질과 동일시하는 그런 비인간적 사고가 아니라 인간이 물질에 의해 지배되고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물질의 매개에 의해 물질적 관계로 전도되어 있는 비인간적 삶을 추구한 인간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맑스가 사회주의사회의 모습을 예견하고 실천적으로 추구한 데에는 바로 이와같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바탕에 놓여 있었으며, 사회주의 혁명과 혁명의 주체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도 변증적이고 유물론적인 사고가 바탕에 놓여 있었다.

그는 혁명을 근본적인 변화라고 생각했으며, 어떤 사회에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혁명을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의 두가지 차원으로 혁명으로 나누면서 정치혁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 즉 근본적인 혁명이 아니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은 표면의 차원 또는 상부구조 차원에서 일어나는 혁명에 불과하며, 그러한 표면적인 혁명을 야기시키는 것은 그것의 근본, 즉 물질적 토대에서 일어나는 사회혁명의 소산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사회혁명은 정치혁명을 수반하지만, 정치혁명이 항상 사회혁명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정치혁명은 사회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사회혁명은 다시 정치혁명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됨으로써 두가지 차원의 혁명이 서로 쌍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혁명이라고 할 때, 정치적인 차원에 있어서의 사회주의혁명, 즉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권력의 수립을 두고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혁명이 아니라 진정한 혁명의 본격화 단계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혁명은 산업혁명과 흡사하게 오랜 세월을 두고 일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혁명이 짧은 기간동안 급속히 일어나는 변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혁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생각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혁명을 폭력혁명이라고 성격지우고 있지만, 이것도 상당히 왜곡된 생각이다. 이는 주로 정치권력을 장학하는 정치혁명의 과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데, 맑스가 이러한 사회주의혁명이 폭력을 수반하는 경향이 많다고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폭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는 정치적인 사회주의혁명이 폭력을 수반하느냐 않느냐 하는 문제는 혁명이 일어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달했는가, 또 그 사회의 정치권력이 얼마나 민주적이냐 하는 데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당시의 영국이나 미국과 같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평화적인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평화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까지 말했다.

한편, 혁명의 주체에 대해서도 맑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적으로 파악했다. 맑스에게서 사회주의혁명의 주체는 말할 나위도 없이 노동자계급 또는 자본주의 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였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자로서 자본주의 시대의 가장 기본적인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체험하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체험에 상응하여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장 강하게 갖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이 계급의식과 사회주의사상을 갖게 되고 계급을 형성하여 자본주의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 하는 혁명의 주체가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계급이 혁명을 통해 이루어내려고 하는 것은 사유재산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계급적인 사회관계와 계급적 존재의 철폐이다. 이런 의미에서, 혁명이란 그것의 주체가 되는 계급이 스스로 자기 자신의 계급적 성질을 철폐하려는 자기부정의 변증법적 과정인 셈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계급이 자동적으로 혁명적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혁명의 필요성과 가능성, 혁명의 목표와 수단에 대한 인식 등을 포함하는 계급의식과 사회주의사상이 먼저 형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이와같은 혁명의식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그것은 우선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이들의 경험으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고 할 수 있지만, ‘물질노동과 정신노동의 분업은 이들이 그러한 의식과 사상을 체계화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러한 체계화는 대체로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철학자나 사회주의사상가 등의 지식인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렇게 체계화된 의식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수용됨으로써 이들의 혁명의식이 형성되게 된다.

이와같이 혁명주체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혁명의식이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에 의해서라기 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닌 지식인들에 의해 체계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지식인들이 혁명의 지도자이고 사실상의 혁명주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맑스는 혁명과정에서 차지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산모가 아니라 산파의 역할이라는 점을 분명히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혁명의 당사자가 아닐 뿐아니라 혁명이 소수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식인이 관념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속성 등 부정적인 속성을 통해 혁명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보아 이들의 역할을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맑스는 혁명과정에서 계급적인 동맹을 맺고 함께 활동하게 되는 농민이나 소상인 등 쁘띠부르조아계급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단을 가졌으며, 따라서 이들과의 동맹을 통해 정치혁명에 성공하는 순간, 프롤레타리아트는 특히 지식인과 쁘띠부르조아계급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았다. 자칫하면, 이들이 혁명의 성과를 독차지하려 하여 혁명을 그르칠 위험이 따르기 쉽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7.맑스사상의 현대적 의의

 

이상에서 우리는 맑스의 사상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살펴 보았다. 맑스의 사상체계는 강의의 서두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크게 철학사상, 사회주의사상, 자본주의이론 등 크게 3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가지 요소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맑스의 인간관 및 역사관에서 기본이 되는 그의 변증법적, 유물론적 관점은 그의 인간소외론과 이데올로기론에서도 기본이 되어 있었으며, 현대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에 대한 해부학적 분석이나 이것을 통해 자본주의사회의 미래와 사회주의적 인간해방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도 그러한 관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그러면, 이제 끝으로 이와같은 맑스의 사상이 지니는 전반적인 의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맑스의 사상은 오늘날의 시점에서 볼 때 합당한 측면도 있고 합당치 못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맑스의 사상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어떤 부분이 오늘날의 현실을 설명하는데 타당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일일이 지적해내는 일은 매우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요하는 일이다. 그런 작업을 복잡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맑스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기에 대한 찬반논의는 자본주의체제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정치적인 입장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조목조목 시비를 따지는 일은 다른 기회로 미루고, 이 시간에는 그 대신 그의 사상이 지니는 전반적인 의의, 특히 그의 사상이 왜 계속해서 영향력을 유지하게 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들을 복잡하게 갈라지게 만드는가 하는 점을 짚어보는 것이 나을 것으로 생각된다.

맑스의 사상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사회주의사회를 이룩하려는 사회주의 혁명사상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를 평가하는 입장에 따라 상반되게 평가되어 왔다. 자본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서 볼 때 그의 혁명사상은 반자본주의적 실천운동의 사상적 무기로서 높게 평가되었다. 그리하여 근래에는 다시 와해되는 과정에 처해 있지만 지구상의 1/3 이상의 인구가 사회주의체제를 구축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맑스사상을 추종하는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사상은 인류를 정치적으로 양분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반면에 자본주의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는 입장에서 보면, 맑스의 사상은 문자 그대로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받아들여 진다. 그리하여 맑스의 사상과 그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심한 탄압이 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의 사상을 신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맑스의 사상 자체와는 상관없이 자본주의 체제가 실제로 여러 가지의 모순점들을 드러내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체제에 대해 비판과 도전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맑스의 사상을 신봉하게 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귀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사회의 모든 문제점들이 맑스의 이론이나 사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그의 이론으로 설득력있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이유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심각한 사상적, 정치적 갈등현상이 그치지 않았으며, 맑스의 사상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사상은 한편으로는 그 계승자들에 의해 새롭게 발전해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반대세력들에 의해 문제점과 한계가 거듭 제기되는 가운데 그것을 대신하는 이론이나 사상들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한편에는 맑스주의적 학문과 사상, 다른 한편에는 맑스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고 경쟁적인 성격을 지니는 학문과 사상이 나란히 발전하고 있다. 맑스의 사상은 이와같이 후대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러한 영향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동안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맑스의 사상이 그러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맑스의 사상 자체가 완벽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자본주의사회가 계급적인 갈등현상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점들을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맑스 사상에 대해 평가할 때 선입견에 사로잡혀 무조건 찬양하거나 무조건 반대만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이며, 어떤 부분이 합당하고 그렇지 않은 지를 따로따로 가려내어 계승할 부분은 계승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버리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주후 2012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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