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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폴더

노년의 비애

by 해찬솔의 신학 2011. 12. 26.

 

 

                                                             노년의 고달픈 비애

 

       서울 상계동의 한 거리에서 최근 만난 이모씨(62)는 리어카에 신문지, 박스, 쌀포대 등을 가득 실은 채 가고 있었다. 그가 서울 방학동에서 상계동까지 돌며 하루 종일 모은 폐지의 양은 125㎏. 이씨는 "예전보다 폐지가 줄었고, 겨울이라 해가 짧아 하루 내내 모아봐야 얼마 안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올해 초엔 1㎏당 160~170원 쳐줬는데, 계속 가격이 떨어져 요즘은 잘 쳐줘도 110원"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씨가 거래하는 폐지처리업체는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1㎏당 60~80원까지 떨어진 곳도 있다. 올 겨울 제지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폐지 단가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폐지 수거인은 늘어난 반면 폐지는 줄었다. 일반 가정에서 폐지를 직접 폐지업체에 넘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불황으로 슈퍼마켓 등에서 내놓는 폐지 양도 급감했다.

'폐지 전쟁'이란 말은 이제 흔한 말이 됐다. 이씨는 "요즘 폐지 주우러 돌아다니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이 늘었다. 집에서 쉬어야 될 노인들까지 폐지를 줍고 다닌다"고 말했다. 폐지 수거 일을 10년 넘게 해온 최모씨(67)는 "요즘 하루 80㎏가량 모아 파는데 7000~8000원 받는 게 전부다. 가끔 고철덩어리 나오면 로또 맞은 날"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엔 아파트에서 나오던 것들도 챙겼는데, 요즘엔 아파트에서 나오는 건 이미 누군가 싹쓸이해 남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고물상을 찾은 한 남성이 폐지를 내려놓고 있다. 올해 초 1㎏당 160~170원 정도였던 폐지가격은 100원 안팎까지 떨어지면서 폐지 줍는 노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윤중 기자6년째 폐지처리업체를 운영해온 서동주씨(53)는 "한 대형 슈퍼마켓에서 가져오는 박스가 지난해엔 하루 평균 150㎏ 정도 됐는데 지금은 65㎏밖에 안된다"고 밝혔다. 서씨는 "대신 1년 전쯤부터 집에서 모은 폐지를 가져와 파는 젊은층이 부쩍 늘었다"며 "경기가 나쁘다 보니 우리 같은 업체들도 독점적으로 수거하는 빌딩·마트 등에서 걷는 양이 줄었다"고 전했다. 폐지처리업체 '준희자원'의 이만복씨(59)도 "원래 겨울에는 공급량이 줄어 단가가 오르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더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슈퍼마켓을 하는 서영순씨(56)는 "요새 '몇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빈 박스를 돈 받고 넘기는 슈퍼들이 많다"며 "하지만 우리는 나오는 양도 얼마 안되고, 노인들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안됐기도 해서 그분들에게 드린다. 새벽에 밖에 내놓으면 금세 가져간다"고 전했다.

폐지를 놓고 싸우는 사람들도 많다. 회사원 김모씨(29)는 "최근 40대로 보이는 사람과 할아버지가 지하철역에서 폐지를 서로 줍겠다고 싸우는 걸 봤다. 젊은 사람들까지 폐지를 두고 싸우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1일 오모씨(68)는 출근길에 지하철 2호선 안에서 신문지를 모으다 질서유지원 ㄱ씨(35)에게 제지당하자 ㄱ씨의 머리와 다리를 때려 경찰에 입건됐다. 오씨는 예전부터 2호선에서 신문지를 걷어 하루 몇 천원씩 벌어 생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는 어둠 속에서 폐지를 주우려는 노인들이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도 커진다. 일부 지자체는 이 때문에 폐지수거 노인들에게 야광조끼를 전달하기도 했다.

노인 한 명이 한 달 꼬박 폐지를 주워 버는 돈은 20만~30만원. 올해는 그나마 벌기도 어렵다. 엄동설한 세밑, 못 쓰는 종이 한 장에 젊은이까지 생계를 거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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