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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김종필과 5.16

by 해찬솔의 신학 2011. 5. 16.

 

 

 

 

                         

 

                              김종필과 5.16

 

                                                                                                                                                                                                          글: 김한영 목사

 

 

조선 개국이 성공한 뒤에 정도전(鄭道傳)은 자신의 역할을 중국의 장량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술이 한잔 들어가서 거나해지면 ()나라는 유방이 세운 것이 아니라 장량이 세운 것이야!” 라고 말이다.

조선의 창업의 주역은 이성계였지만, 그 배후에서 모든 각본을 쓴 사람은 정도전 사신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JP5.16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16의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은 내가 혼자서 짰고, 그 모델은 나세르와 나기브가 함께 일으킨 이집트 혁명(1952)이었다고 술회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JP는 정도전과 같은 인물이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연의 지시를 받으면서 주연을 빛내주는 정도의 조연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적으로 주연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창업의 마스터플렌을 짜는 수준의 2인자였다는 점이 장량, 정도전, 김종필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거사에 성공한 이후의 인생행보는 각기 다르다. 장량은 추격대가 도저히 찿을 수 없는 심산유곡 지형인 장가계(張家界)로 도망가서야 80세 무렵까지 천수를 누리며 살 수 있었고, 정도전은 56세에 친구 집에서 술 마시다가 이방원에게 기습을 당해 칼을 맞고 죽었다. JP는 올해 85세인데도 한쪽 팔만 약간 마비되었을 뿐 여전한 청력과 정력 기억력을 유지하면서 50년전 일을 담담하게 술회하고 있으니 정도전보다 좋은 팔자 같다. 지나고 보니 5.16은 권력의 상층부만 일부 교체가 이루어진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사건이었다. 1623년에 광해군과 대북당(大北黨)을 제거한 쿠데타였던 인조반정(仁組反正)이래로 고종시대에 이르기까지 근 300년 동안 정권은 노론당(老論黨)의 장기집권이었다. 300년 동안은 중간에 남인당이 잠깐 정권을 잡은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기호 노론당의 시대였고 영남의 남인들은 철저한 견제와 푸대접을 받았다. 영남의 남인들은 당상관(堂上官.3)이상의 벼슬을 받아 조령(鳥嶺)을 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연장선에서 보면 박정희와 김종필의 5.16300년 동안 춥고 배고팠던 남인이 처음으로 정권을 잡은 사건으로 해석된다. 후일 경상도 남인과 다른 노선으로 가기는 했지만50년 전의 김종필은 ‘5.16’반정(反正)‘의 한 시대를 여는 가본을 짠 셈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