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타자기
사진의 타자기는 신품으로 본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달그락 걸쇠를 푼다. 따르륵 둥근 손잡이를 돌려 종이를 끼운다. 드르륵 캐리지 뭉치를 오른쪽 끝까지 민다. 따닥따닥 자판을 때릴 때마다 긴 활자대가 벌떡 벌떡 일어서서 철컥철컥 글자를 찍는다. 한 줄이 차 가면 땡 하는 가벼운 종소리가 울린다. 레버를 젖혀 철커덕 캐리지를 움직이고 새 줄이 시작된다. 타자기로 글을 쓰면 귀부터 즐겁다.엷게 번져나는 잉크 냄새, 탁상등만 켠 어둑한 방에서 치는게 제격이다.
"내 나이 20세, 그 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해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었다." 장정일의 자전적 소설 "아담이 눈 뜰 때" 첫 줄은 80년대 초 문청(文靑)들이 선망했던 타자기로 시작한다. 영국 시인 '존 메이스필드'는 타자기로 "시와 산문을 두드려 만든다"고 노래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는 가난한 시절 소설을 써냈던 타자기를 '빵 굽는 타이프라이터'라고 불렀다.
20세기 초 타자기는 여자들을 처음 사무실 일터로 불러냈다. 타자란 기계적이고 지루한 일거리였다. 1926년 미국 속타(速打)대회 우승자 '스텔라 윌린스'는 1분에 264단어를 치는 기록을 세웠다. 그때 되풀이해 친 문장이 '이 일이 얼마나 지겨운지(How I loathe this work)'였다. 그래서 타자수에겐 원초적 우룰함이 있다. 'T S엘리어트'의 "황무지"에서 짜증이 밴 타이피스트가 기계적인 정사(情事)를 나누듯.
우리도 타자기는 젊은 여성이 '화이트칼라에 진출하는 계기였다. 박정희정권은 61년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모든 학원이 새로 인가받게 했다. 이 법에 따라서 1호로 등록된 학원이 서울 신설동의 "뉴타자 학원"이었다. 국가기술직 타자자격시험엔 한 해 100만명이나 몰렸다고한다. 이 시험은 컴퓨터 물결에 휩쓸려 95년 사라졌다. 이듬해 국산 "크로바'와 "마라톤"타자기 생산도 끝났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아 있던 타자기 공장, 인도 "고드레지 & 보이스" 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인도 공업화의 상징으로 가동된 지 60년 만이고 미국에서 잉크리본식 타자기가 발명된 지 143년 만이다. "타자기는 타자하는 사람의 성실성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타자기가 마침내 사라질 때 우리는 그 점을 그리워할 것이다"(R 로젠블랫). 타자기 활자가 남긴 요철자국에선 글쓴이의 마음이 만져 질 듯했다. 얌체처럼 매끈한 컴퓨터 글자에선 맛 볼 수 없는 온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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