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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타자기

by 해찬솔의 신학 2011. 8. 6.

 

 

                                  추억의 타자기

 

 

사진의 타자기는 신품으로 본인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달그락 걸쇠를 푼다. 따르륵 둥근 손잡이를 돌려 종이를 끼운다. 드르륵 캐리지 뭉치를 오른쪽 끝까지 민다. 따닥따닥 자판을 때릴 때마다 긴 활자대가 벌떡 벌떡 일어서서 철컥철컥 글자를 찍는다. 한 줄이 차 가면 땡 하는 가벼운 종소리가 울린다. 레버를 젖혀 철커덕 캐리지를 움직이고 새 줄이 시작된다. 타자기로 글을 쓰면 귀부터 즐겁다.엷게 번져나는 잉크 냄새, 탁상등만 켠 어둑한 방에서 치는게 제격이다.

 "내 나이 20세, 그 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 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해 레코드를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이었다." 장정일의 자전적 소설 "아담이 눈 뜰 때" 첫 줄은 80년대 초 문청(文靑)들이 선망했던 타자기로 시작한다. 영국 시인 '존 메이스필드'는 타자기로 "시와 산문을 두드려 만든다"고 노래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는 가난한 시절 소설을 써냈던 타자기를 '빵 굽는 타이프라이터'라고 불렀다.

 20세기 초 타자기는 여자들을 처음 사무실 일터로 불러냈다. 타자란 기계적이고 지루한 일거리였다. 1926년 미국 속타(速打)대회 우승자 '스텔라 윌린스'는 1분에 264단어를 치는 기록을 세웠다. 그때 되풀이해 친 문장이 '이 일이 얼마나 지겨운지(How I loathe this work)'였다. 그래서 타자수에겐 원초적 우룰함이 있다.  'T S엘리어트'의 "황무지"에서 짜증이 밴 타이피스트가 기계적인 정사(情事)를 나누듯.

 우리도 타자기는 젊은 여성이 '화이트칼라에 진출하는 계기였다. 박정희정권은 61년 사설강습소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모든 학원이 새로 인가받게 했다. 이 법에 따라서 1호로 등록된 학원이 서울 신설동의 "뉴타자 학원"이었다. 국가기술직 타자자격시험엔  한 해 100만명이나 몰렸다고한다. 이 시험은 컴퓨터 물결에 휩쓸려 95년 사라졌다. 이듬해 국산 "크로바'와 "마라톤"타자기 생산도 끝났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아 있던 타자기 공장, 인도 "고드레지 & 보이스" 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인도 공업화의 상징으로 가동된 지 60년 만이고 미국에서 잉크리본식 타자기가 발명된 지 143년 만이다.  "타자기는 타자하는 사람의 성실성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타자기가 마침내 사라질 때 우리는 그 점을 그리워할 것이다"(R 로젠블랫). 타자기 활자가 남긴 요철자국에선 글쓴이의 마음이 만져 질 듯했다. 얌체처럼 매끈한 컴퓨터 글자에선 맛 볼 수 없는 온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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