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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실업과 그리스(Greece)사태

by 해찬솔의 신학 2008. 12. 14.

 

 

                   실업과 그리스(greece)사태

 

 

우리나라의 현재 체감실업자는 317만명으로 나와 있다. 그것은 실제 실업자 이외에 구직단념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 그냥 '쉬었음'이라고 말하는 사람 등 잠재적 실업자를 포함한 숫자다. 나라 전체로 보면 12%에 달한다. 올해 취업자 증가수는 지난해 28만명에서 14만명 선으로 크게 줄었고 내년에는 4만명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한국은행은 분석하고 있다. 실업 급여 수급자는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대기업의 65%도 내년 채용계획을 못 정하고 있다. 한 조사기관이 100대 기업 (매출기준) 중 72개사를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65.3%가 미정이라고 했다. 나머지 기업 중에서도 내년에 계획이 있는 기업은 30.6%이고, 4.1%는 아예 채용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이 최근 3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년 설비투자계획도 올해보다 6.8% 줄어 일자리 역시 감소할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가장 큰 문제는 실업이다.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 쉬거나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임시직, 일용직 일자리를 제공해온 건설현장엔 찬바람이 분 지 오래고, 매출이 뚝 끊긴 자영업자들은 직원들을 내보내고 있다. 거리엔 이미 문을 닫은 가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계부채도 당연히 크게 늘어날 것이다. 한은은 자산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해 '역(逆)자산 효과'를 초래할 것이며, 물가상승 임금하락 등으로 가계 실질임금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심지어 먹고사는 문제까지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최근
그리스에서 벌어진 데모와 폭동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데모의 와중에 15세 소년이 경찰에 의해 피살되면서 파괴적 폭동으로 발전한 그리스사태는 그 원인(遠因)이 경제의 침체와 청년실업에 있다고 현지 보도들은 분석하고 있다. GDP성장률은 유로국가 최저인 3%에 머물고 있는 데다 전체 실업이 8%인 데 비해 청년층의 실업률이 21%에 이르고 있다. 교육의 질, 지도층의 부정부패, 법치의 부재(不在), 연줄에 얽힌 출세주의 등 여러 요인들이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거기에 야당지도자, 대학교수, 무정부주의자 등이 청년층의 불만에 가세해 불을 지르고 있다. 그리스의 폭동은 지금 전 유럽의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우리와 그리스는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촛불시위'로 미화된 쇠고기 파동을 겪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때 '쇠고기'란 것이 먹거리의 문제이기는 했어도 우리의 식생활을 당장 위협하는 것은 아니었고, 거기에 '반미'의 문제, 신참정부의 자만심의 문제가 얽혀 그처럼 폭력적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하물며 실업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가족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 자식을 가르치고 취업시키는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다르다. 고용대란이 심각해질 경우,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가 어디까지 폭발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거기다가 정부의 경제회생 방침의 우선순위가 실효적이지 못하고 야당과 좌파세력 등이 시위를 부추기거나 가세할 경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점을 절대로 허술하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통달한 만능인인 것처럼 매일 쏟아내는 '방침'과 '계획'과 '훈계'와 '지침'이란 것이 기업들의 구조조정, 은행 압박하기, 외환 끌어들이기 등에 집중되고 있는 동안, 국민들의 실생활은 뼛속까지 추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정부의 '기업 살리기'가 궁극적으로 고용을 증대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4대강 정비사업 등이 그렇다.

그러나 굳이 비중을 말하자면 국민들을 실업의 고통에서 건져내는 것이 기업 살리기나 구조조정에 우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기회에 부실기업을 정리해서 경제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사람들을 줄여서 기업의 건전성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도 우선 국민이 살고 나서의 문제라는 인식이 더 중요하다. 급격한 실업이 가져올 수 있는 폭발적 성격을 감안할 때 사회안전망과 경제안전망의 우선순위를 효율적으로 저울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권도 기업의 규모를 줄이고 근로자의 급여를 줄여서 되도록 현 직원의 일자리를 보존하는 상생(相生)의 길을 가도록 법제화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근로자들도 이 비상시국에서 임금수준 결정에 협력해야 한다. 실업과 경제침체의 십자포화(十字砲火)가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전진하는 전투적 지혜를 가져야 한다.

모두들 전보다 조금 여유가 없어도, 조금 목소리를 낮추며 사는 한이 있어도, 길거리를 방황하지 않고 직장에 남아서 경제침체의 겨울을 이겨내는 인내를 지녔으면 한다. 그것이 사회적 체온으로 서로를 덥히며 사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