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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료·논문

어거스틴의 신학과 사상

by 해찬솔의 신학 2008. 2. 4.

                     어거스틴의 신학과 사상

 

                                                           글쓴이   김한영 목사

 

 

I. 서 론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행복은 결코 수단이 아니라 항상 목적임을 인정한다. 더욱이 행복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하여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 최종적인 목적이다. 우리는 부와 건강, 자유와 지식이 그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선에 이르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그것들을 원한다. 그 각각은 다른 선들 가운데 하나이지만, 행복은 다른 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행복은 더 이상 바랄 것을 남겨 두지 않는 완전한 선이요 모든 선의 총채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행복은 지고선(the highest good)이 아니라 총채선(the total good)인 것이다.

행복은 우리가 모든 노력을 쏟아 부을 만한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을 얻기위하여 자신의 젊음과 힘과 노력과 일생을 투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행복이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고자 하며 그 어떤 것이라도 희생해서라도 얻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 행복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행복을 추구하다가 그것을 끝내 얻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아마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던지는 질문이며 또한 그것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 인생들의 삶일 것이다. 어거스틴도 이 행복을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추구하였으며 결국 하나님을 소유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요한네스 힐쉬베르거는 말하기를 “아구스티누스는 삶의 목표와 완성이 행복 속에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그는 행복에 관한 고대의 학설 전체,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키케로, 필론 및 플로티노스의 사상이, 그의 앞에 전개되어 있으며, 그는 이것들을 이용할 줄을 알았다고 덧붙여 말하였다.

금번에 어거스틴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비록 박용규 교수님이나 그 외의 대부분의 초대교회사나 서양 철학 책들이 별로 깊이 다루고 있지 않는 어거스틴의 “행복”사상에 대하여 다루어 보고자 한다.

 

기독교 역사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은 기독교 철학과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처왔다. 히포의 주교로서, (신)학자로서, 사상가로서, 역사가로서, 저술가로서 그리고 교회 행정가로서 그의 다양한 면모는 그를 연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운 기독교 지성사의 거두로서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철학적 입장에서 볼 때, 그는 그의 인간에 관한 문제, 인간의 인식의 가능성과 그 한계성에 대한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 시간과 역사의 문제 등을 그의 다양한 저술에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용규 교수는 어거스틴을 “고대철학과 기독교의 종합”을 만들어 낸 인물로 소개하고 있으며, 그의 가장 큰 공헌을 동방교회의 전통을 거부하지 않고 그들의 기독교 전통을 전통화 하면서 서방교회의 신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중세의 스콜라 철학, 교황의 정치 및 교회제도 정립의 초석을 이룬 사람이며, 어거스틴의 영향력을 그의 모든 세대에 미친 인물로 평가하였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와의 논쟁을 통하여 기독교를, 신풀라톤 사상을 통해 인식론을, 도나티스트와의 논쟁으로 교회론을,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으로 죄와 은총론을, 신국론을 통해 역사철학을 발전시켰다는데 있다.

 

II. 본 론

 

어거스틴의 생애와 주변의 상황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은 354년 11월 13일, 히포로부터 멀지 않은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Numidia)의 작은 마을인 타가스테(Tagaste)에서 출생했다. 열정적이며 감수성이 많은 부친 패트리키우스(Patricius)와 기독교 역사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그 높은 지성과 영적인 경건성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끊이지 않았던 모친 모니카(Monica)사이에서 태어난 어거스틴은 이미 그 환경에서부터 신앙의 싹을 키어온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생애 중에서 그는 적지 않은 시간들을 세속적 쾌락과 마니교의 사상에 빠져있었고, 때로는 플라톤적인 이상 속에서 헤매이기도 하고, 때로는 지적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했으나, 결국 어머니의 끈질긴 기도와 암브로스의 감동에 넘치는 설교, 그리고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무려 33년간에 걸친 지적 방황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오류와 방황이 그로 하여금 더욱 기독교 사상이라는 진리의 길을 바르게 가도록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기독교 역사에 커다란 획을 긋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크게 기억되어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은총(Grace of God)을 그렇게 높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 어떤 자서전보다도 어거스틴은 자신의 자서전인 “고백록”에서 자신의 무능과 교만을 철저히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만을 의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생애 중에서 잊지 못할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어거스틴의 말하는 대로 그의 어머니가 깊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를 향하여 하나님께 드린 눈물겨운 기도였다.

391년에 그는 히포(Hippo)에서 사람들의 요청에 의하여 교회의 장로에 선출되고, 395년에는 같은 도시에서 주교로 임명된다. 그리고 세상 떠나는 날까지 약 38년 동안을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서구의 기독교 지성을 찬란하게 꽃피웠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서구 기독교의 정신적 지주가 됨으로써 당시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교회의 견해를 대변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그는 언젠가 자신이 빠진 적이 있는 마니사상과 도나티스트, 그리고 펠라기우스의 입장을 반박하고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세워나가게 되었다. 76세 되던 430년 8월 28일, 그는 많은 동료들과 제자들이 둘러 싸여 신앙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당신의 집에서 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지요! 당신의 품안에서 당신의 아름다우심을 열망하는 나의 마음이 불타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행복 사상.

어거스틴은 카시키아쿰(Cassiciacum)의 기간 동안 그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과 여러 가지 흥미 있는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것들은 후에 어거스틴의 초기 저작들로 되어진다.

강근환박사는 이러한 어거스틴의 초기 저작가운데서도 “행복한 생활”(De Beata Vita)을 그가 맨 처음 완성한 작품으로서 그 책이 쓰여진 시기를 어거스틴의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고 이러한 시기에 포착되고 논의되어 쓰여진 이 책의 주제인 행복이 그의 사상의 바탕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라고 보았다.

어거스틴은 그의 소년시절부터 그가 33세에 소위 진리의 항구에 도달하기까지 그의 혼의 고된 편력은 행복과 평안을 찾아 헤매는 흔적의 외적 표현이었다. 그의 철학에 대한 관심은 실제적이었고, 실존적인 자기 혼의 안정과 행복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에게 있어서 철학의 목적은 무미건조한 존재 일반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가 아니라 자기 혼의 행복한 생활에로의 추구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래적인 욕구의 충족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누구에게나 있어서 근본적인 질문이 된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행복과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 무엇인가 채워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쾌락으로 자신의 공백을 메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였고, 순례의 여정을 계속하게 되었으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이냐? 는 질문을 끊임없이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실존적인 해석은 적어도 그의 “고백록”이나 “행복한 생활”을 통해서 그 타당성을 지지 받는다.

어거스틴의 마니교나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 신플라톤철학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여정은 진리에 대한 욕구였다.

 

오 진리, 진리여 그들이(마니교인)나에게 계속하여 여러 가지 면으로 많은 말로 당신의 이름을 약간 속삭여 주었을 때 내 영혼의 골수는 얼마나 당신을 열망했었습니까?

 

어거스틴에 있어서 행복은 인간의 기초적인 근본 욕망으로서 추구된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궁극적인 진리인 동시에 최고의 척도인 지혜를 소유함에 있다고 보았다.

카시키아쿰이란 곳에서의 어거스틴과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아들과 친구들과의 대화의 주제가 바로 행복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행복을 원하지 않나?” 했더니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찬성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에 나는 “자네들 생각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사람도 행복할 것 같은가?”라고 물었더니 모두 부인했습니다.

 

"행복한 생활“에서 논술된 주제는 행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비록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행복을 생각하지 않을는지 몰라도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행복과 연관되어 있다. 어거스틴의 철학의 주목적은 언제나 실질적이었고 항상 인간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생의 행복에 필요한 지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겠는가? 성서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그 지혜 되시는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하여 말하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이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한 자는 지혜를 소유한 자요 따라서 그 사람은 행복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님이시다. 진리는 항상 불변하고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모든 피조물은 시간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피조물에서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며 그것을 소유함으로서 행복을 느낀다.

어거스틴에 있어서 이성은 신인식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처야만 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과 일치되는 최고의 진리를 인식케하는 지성적 그리고 영적인 영역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식작용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자신의 존재에 내재하는 이성의 기능을 통해서만 인간은 신인식에로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회상하게 하고 하나님을 요청하게 하고 모든 어려움을 억누르고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도록 우리와 함께 애써주는 그 어떠한 소리가 진리의 샘으로부터 우리에게로 흘러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신비의 태양은 빛을 쏘아 우리 마음 안에 타고 있는 불을 밝혀줍니다. 그런데 이 태양을 비록 우리 눈이 아직 그다지 튼튼하지 못한 탓으로 혹은 갑자기 눈을 뜬 탓으로 우리가 씩씩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전체를 볼 수는 없지만 아무튼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 진실한 것도 이 태양의 덕택인데 이 태양이야말로 곧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완전과 모든 전체가 통째로 깃들어 있는 샘이 태양이며 이 태양이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하늘의 태양처럼 만물의 근원이 되시며 또한 그 인식의 근원이 되신다. 그 분 안에 주관적인 인식과 세상의 객관적인 실제와의 관련성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이해할 수 있기 전에 믿어야 한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참으로 신앙은 지식의 시작이다. (Faith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III. 결 론

 

어거스틴의 초기저작 가운데 맨 처음으로 완성된 De Beata Vita에서 논의 된 주제인 행복을 중요한 어거스틴의 사상적 주제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행복은 인간이 생래적인 욕망으로 추구된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궁극적인 진리인 동시에 최고의 척도인 지혜를 소유함에 있다고 보았다. 성서의 가르침에 의하면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요14:6). 어거스틴은 오랜 이교도의 순례 끝에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인간의 생래적 욕망인 행복에 대한 해결책인 진리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거스틴에 있어서 참되고 행복된 삶에로의 첫걸음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인간의 신앙이다. 이로서 볼 때 어거스틴의 행복추구는 매우 기독론인 것으로 그리스도만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참고 문헌

 

1) 강근환, St Agustine의 행복 추구, 신학과 선교 제 6 집 (서울신학대학, 1980)

2) 데이비드 테일러, 최치남역, 어거스틴의 생애, (서울: 생명의 말씀사,1986)

3) 문석호, 철학 (상), 이해의 지평과 그 한계, (서울: 총신대학출판사, 1992)

4) 박용규, 초대 교회사, (서울: 총신대학교출판사, 1994)

5) 선한용, 성 어거스틴에 있어서의 시간에 대한 문제연구, 신학과 세계 제 8호, (서울: 감리교신학대학, 1982)

6)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저/ 강성위 역, 서양 철학사, (서울:이문출판사, 1983)

7) 유스토 L. 곤잘레스 저/ 서영일 역, 초대교회사, (서울: 은성, 1994)

8) 피터 브라운 저/ 차종순 역,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출판국, 1992)

 

9) B. 러셀 저/ 최민홍 역, 서양 철학사 (상), (서울: 집문당, 1993)

10) M. J. Adler 저/ 장건익 역, 열 가지 철학적 오류, (서울: 서광사, 1990)

11) St. Agustine 저,/ 김효신 역, 행복한 생활, (서울: 카톨릭청년사, 1960)

12) St. Agustine 저/ 오병학, 임금선 공역, 참회록, (서울: 예찬사, 1993)

13)The Father of the Church, Saint Augustine Confessions Vol. 21, (Washington, D. C: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