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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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의인론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Human Being of Martin Luther)
김한영 박사
목 차
I. 서 론
II.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III. 인간의 원죄
IV.그리스도인에게 남아있는 죄
V. 죄인과 의인의 동시성
VI. 맺음말
I. 서 론
루터(Luther)는 인간의 기원을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인론을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말은 인간의 기원을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설을 조금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드린 다는 뜻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인간의 창조를 창세기에 기록된 그대로 믿지않고 있다. 따라서 인류의 기원을 성경에서 해석하기전에 성경밖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살펴본 후에 루터가 성경을 기초
해석하고 있는 인간론을 해석해 보려고 한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누구든지 적어도 한번 쯤은 생각해봄직한 중요한 논제이다. 그래서 최초의 인류가 지금으로부터 과연 얼마 전에 지구상에 살기 시작하였는가 하는 인류의 역사에 대한 문제는 지금껏 팽팽한 이견의 대립을 보여왔다. 또 다윈(CharlesDarwin)의 진화론은 그 이론이 지니고 있는 명백한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창조설의 가장 강한 적수로서 군림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과 또 하나의 비성경적인 이론이 우리를 현혹하고 있다. 이 이론은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신화적 또는 상징적으로 설명함으로 사실상 무신론적 진화론과 그 성격의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의 근원인 성경을 통하여 인간의 기원에 대한가장 권위 있고도 신빙성 있는 진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의존하여 인간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 방법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 가운데서도 인간의 창조는 가장 독특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다른 피조물 가운데서는 발견하기 힘든 여러가지 특별한 원리들을 인간속에 두셨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간이 심리적 구조와 생체적 원리 등을 규명하는 일은 학문의 여러 분야에서 그 귀중한 가치성을 널리 인정받아왔다. 마찬가지로 인간 창조의 원리를 고찰하는 일은 조직신학의 여러 과제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두신 여러 원리들을 발견하면 우리는 인간의 귀중한 가치성과 사명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인간 창조의 원리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 음받았다는 성경의 놀라운 진술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기능이 쇠퇴해진 인간속의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회복되어질 수 있다는 구원의 방법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된다.
II.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루터는「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것을 그의『창세기 주석』(Commentary on Genesis)에서 해설하고 있다. 그는「인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 in man)을 강조한다. 특히 아담에게 부여된 생명에 대해깊이 해설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며, 그는「인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① 하나님은 아담에게 두 종류의 생명을 부여했는데, 하나는 동물적 생명이고 하나는 불멸의
생명이다.
② 동물들이 생명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그리고 잠을 자드시 인간들도 잠을 잔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하였다는 것은 동물적 삶과 다른 독특한 삶을 확실히 나타내 주고 있다.
③ 아담의 불멸의 생명은 아직은 분명히 계시되지 않고 있지만 소망중에 보존되고 있다. 따라서 그가
타락하지 아니했으면 죄없이 행복하게 먹고 마시며 일하며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 확실하다.
④ 신학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의 지성이
믿음에 의해서 나타나고 그의 기억은 희망에 의해 증명되고 그리고 그의 의지는 사랑에 의해 나타난다.
따라서 신학자들은 기억은 하나님의 능력의 형상이며, 정신은 하나님의 지혜의 형상이며, 그리고 의지는
하나님의 정의의 형 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바른 이해에
도움이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락해서 부패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구성한다면 사단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그 형상은 지성, 기억, 이성, 그리고 의지가 전혀 죄에
오염되지 아니한 가장 고상한 창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적인 완전성과 육체의 모든 힘과
미적 조건까지 구비되었으므로 모든 피조물보다 훨씬 뛰어났을 것이라고 믿는다.
⑥ 그러므로 나는「아담아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도덕적 실체 혹은 본성 속에 소유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타락전에 아담은 죽음도 없이, 공포도 없이, 하나님처럼 살고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인데, 타락 한 후에 이 형상을 잃어버렸다.1)
이와 같이 루터는「인간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영적으로 깊이 해설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어건스틴(Augustin)의『삼위일체에 관하여』(On the Trinity)에서 해설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론을 인정한다. 그 형상론의 내용은 영혼의 힘과 기억, 정신, 지성 그리고 의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루터는 이러한 신학자들의 형상론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형상론은 타락한 인간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으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2)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창세기의 많은 진술들이 증언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창 5:1),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of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
신약성경에서도 이에 대한 많은 성경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 11:7),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약 3:9)등과 같은 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image)이라는 말과 ?모양?(likeness )이라는 말을 구분지으려 했다. 예를 들면 교부시대의 이레네우스(Irenaeus)나 터툴리안(Tertullian)과 같은 이들은 형상은 인간의 실체적 특징에서, 그리고 모양은 인간의 영적인 특징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서 볼 때 이 두 단어는 동의어로서 종종 교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장 26절에는 이 두 단어가 모두 나오지만, 그 다음절에서는 단지 형상이라는 단어만이 나 온다. 또 창세기 5장 1절에는 단지 모양이라는 단어만이 나오지만, 이어지는 3절에서는 이 두 단어가 모두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두 단어가 모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두 단어가 서로 상이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성경의 명백한 진술이다. 즉 이 말은 사람의 구성요소 중 특정한 어느 한 부분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이 아니요, 또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유사하게 지음 받았다는 말도 아니며,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는 사람의 전 존재가 온전히 하나성의 형이라는 점이다.
III. 인간의 원죄
루터는 아담이 타락한 후 한 사람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 유전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윈죄론은 기독교의 모든 교리의 기초가 되는 교리로서 죄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기독교 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건이 된다. 기독교 복음의 중심 내용을 구원이라고 본다면 죄론은 구원론의 전제가 된다.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장벽으로 본다. 죄로 인하여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형벌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죄 문제의 해결은 곧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그의 본래의 지위를 되찾는 것이며, 영원한 형벌의 저주를 벗어나 영생으로 들어간다. 사람은 하나님의 마지막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유일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릴 것을 명령하시고 축복하였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써 인간을 그의 자녀들로 부르시며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기원하셨다. 그런데 사단은 이러한 사람을 속여서 죄를 범하게 하고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축복과 지위를 상실하게 하였다. 사단은 사람보다 먼저 타락한 자이며 죄를 주관하고 있느 자이며 하나님의 원수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장벽을 제거하는 일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사람을 사단의 손에서 구해내는 일이다. 사단은 에던 동산에서 하나님의 품에있는 사람을 유혹하여 타락시켰다. 그리고 현재도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죄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온갖수단을 아끼지 않는다. 루터는 원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①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죄가 유전되였으며, 그의 불순종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며,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인간은 사망과 사단에게 순종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원죄라고 부른다.
② 원죄의 열매들은 십계명에서 금지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죄의 유전은 본성의 깊은
부패로 인해 이성(Vemunft)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계시를 믿어야 된다. 그
성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시 51:5, 롬 5:12~14 출 33:3, 창 3:7).
③「스콜라 신학자들의 교의」(the dogmas of the Scholastic doctors)는 전적으로 잘못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인간의 자연적 능력은 완전히 부패되지 않았으며, 철학자들이
가 르치는 것과 같이 인간의 본성은 바른 이성과 선한 의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④ 스콜라 신학자들은 인간은 선과 악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으며, 그리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행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주신다.
⑤ 스콜라 신학자들은 성례에 참여하기를 원하면 선행을 행할 필요가 없으며, 죄를 범할 목적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은 죄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의 부족에서 온 것이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오른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필요 없는 죽음이 된다.
이와 같이 루터는 원죄에 대해 해설하고 있으며, 그는 스콜라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원죄에 관한 교리를 부정했다. 루터는 그들이 원죄에 대하여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죄와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죄(origianl sin)라는 신학적인 개념은 처음으로 터툴리안(Tertulian of Carthage, 150~225?)에 의해서 정립되었다. 그는 은혜(gaoe)라는 것은 부패한 것을 제거하는 것인데, 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흡수되어 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부패의 개념은 본성의 자체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출생을 통 하여 전래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최초로 원죄의 교리(the dootine of origin sin)를 체계화 한 것이다. 4) 그러나 이거스틴(Augustine)시대에 와서 그 당시에 죄론이 큰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당 시에 팰라기우스(Pelagius)가 어거스틴과 죄론에 대해서 논쟁을 대리든 시대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원죄가 그의 후손들에게 유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반대하여 어거스틴는 아담의 좌가 그의 후손들에게 유전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논쟁에서 어거스틴의 죄에 대한 교리가 온전하게 정리되게 되었다.
따라서 원죄는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를 말하며,신학자들의 견해는 원죄가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라는 견해에 거의가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죄가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를 밖고있는 것을 신학적으로 처리하는 과정과 방법에 있어서 서로 다른 다양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원죄는 구원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원죄가 인간의 역사속에 존재하지 아 니했더라면 인간의 역사가가 지금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계시도 주지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했 을 경우에 그의 후손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했을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발생한 원죄에 대해서 고찰하려고 한다.
웨슬리에 의하면 인간은 모태로부터 타락된 죄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이 그의 영혼 전체에 파급되 어 모든 능력을 전부 부패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 악한 뿌리에서 솟아나는 악한 기질들을 보게된다. 그 악한 기질은 교만, 정신적 불손, 편견, 허영, 증오, 시기, 질투, 보복, 분노, 원한, 비통, 적개심, 세상에 대한 애착, 자아의지 그리고 우매한 욕망들이라고 말했다. 5) 루터도 이러한 죄들을 원죄의 속하는 죄들이라고 말했다. 6)
IV.그리스도인에게 남아있는 죄
루터는 세례받은 성도들에게 죄가 계속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 그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강조한 내용을 인용해 영을 따라 육체의 행위를 죽이지 아니하고 육을 따라 살면 그리스도인이라도 죽을 것 이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나는 다 른 사람들에게 전도한 후에 자기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경을 인용해 루 터는 세례받은 성도들에게 남아있는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① 성도들은 기도와 금식 그리고 노동을 통해 우리의 육체에 남아있는 죄와 싸워야 한다.
②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음란과 악한 욕심과 탐욕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③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육체속에 남아있는 악한 정욕들 때문에 탄식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④ 성 제롬(St. Jerome)도 세례 후에 그의 육체속에 남아있는 죄, 즉, 악한 정욕 때문에 금식과 철야하고
그리고 노동을 통해 그 정욕을 극복하려고 노력 했다.
⑤ 성 키프리안(St. Cyprian)도 그의 설교집을 통해 증언하기를 탐욕을 극복하면 성욕이 생기고, 성욕을
극복하면 욕망이 생기고, 욕망을 극복하면 분노가 생기고, 분노를 극복하면 교만이생기고 그리고 교만을
극복하면 미음과 질투가 생긴다고 증언했다.
⑥ 우리는 사단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살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육체속에 남아 있는 죄와 싸운다.
그래서 사도 바올은 증언하기를 나는 나의 영을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지만 나의 지체들에는
반대되는 죄의 법이있다고(롬 7:%) 증언했다.
⑦ 그러므로 세례받은 성도들에게 계속 죄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 죄에 반대해 투쟁해야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루터는 세례받은 성도들에게 계속남아 있는 죄에 대해 해설하고 있으며, 그는 이러한 죄가 원죄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아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정죄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없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강조한다.
웨슬리(John Wesley)는 원죄에 관해서는 루터와 견해를 같이한다. 웨슬리는 죄인이 의롭다 함을 얻을 때 인간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죄가 깨끗이 소멸된다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 그 이유는 의롭다함을 얻은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 시기(envy), 악한 추측(evil-surmising, 편파심(partiality), 교만(pride), 교집(selfwill), 불신(unbilef), 원한(resentmint), 그리고 다툼(strife) 같은 죄들이 계속 남아 있다고 했다. 9)
웨슬리는 중생한 자에게도 계속 죄가 남아 있다는 것을「신자 속에 있는 죄」(On Sin in Belivers)라는 설교 제목을 통해서 강조했다. 죄를 회개하고 중생의 경험을 가진자라도 죄가 계속 남아있다고 말했다. 중생한 자에게 계속 남아있는 죄는 외적인 죄(outwfard sin)가 아니라 본성의 부패한 죄라고 불렸다. 중생한자에게 계속 남아서 성령을 거스리는 죄의 성질은 습관적인 죄나 고의적인 범죄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죄를 정욕, 교만, 자기 중심주의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 이와 같이 중생한 자라도 그 마음 속에 본성의 죄가 계속남아 있어서 성령을 거스려 싸운다고 하였다 이러한 죄를 원죄와 동일시 하였으며, 동시에 범죄 가능성도 있다고 다윗의 범죄를 인용해 말했다.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죄들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을 그들 자신이 시인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웨슬리는 신생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다 같이 이러한 죄 때문에 신앙 생활에 장애가 됨을 시인하고 있다.
웨슬리는 신자속에 남아 있는 죄의 표적들을 다음과 같은 성경 내용을 인용해서 설명한다. 그는 고린 도전서 3장 1절의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의 내용이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 생활하 는 신자들의 죄를 지적한것이라고 말한다. 웨슬리는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 룰 뿐만 아니라 그것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11)
웨슬리는 신자 속에 남아 있는 죄의 상태를 분명히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죄가 계속 남아서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죄와 성령이 공존한다는 원리가 성립된다. 신자속에 계속 남아있는 죄와 성령 이 공존한다는 문제에 대해서 웨슬리는 죄를 허용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고 죄와 계속 싸우고 있는 상태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12)다시 말하면 온전한 성결의 상태가 되지못한 마음속에도 성령이 내주(dwells)하신다. 이러한 심령 상태는 죄를 허용하지 않고 계속 죄와 싸 우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생의 경험을 얻은 사람들의 심령 상태는 죄와 계속 싸우는 상태에서 성령을 모시고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웨슬리는 신자 속에 남아 있는 죄가 그 심령을 지배하지 못하고 쇠사슬에 매인 상태로 남아서 항상 싸움을 일으키고 있으나, 점점 그의 세력이 약해지고 신자는 그 죄의 세력을 정복하는 단계로 발전되어 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V. 죄인과 의인의 동시성
루터는 아담의 한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아담의 유전죄를 주장한다. 이러한 원죄에 대한 견해는 로마서 5장 12절과 시편 51편 5절에 근거를 두고 어거스틴(Augustin),루터(lutes), 칼빈 (Calvin),그리고 웨슬리(Wesley)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죄로부터 사함을 받는 방법론에서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다. 루터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 죄가 남아 있어서 성도들이 고통을 당 하고 있는 것을 누구 1보다도 깊이 탄식하는 신학자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죄 때문에 깊이 탄식한 신학 자들은 성 제롬(St.Jeerome), 성 키프리안(St. Cyprian), 성 어거스틴(St. Augustin), 루터(Luter), 칼빈(Calvin), 그리고 웨슬리(Wesley)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원죄로부터 정결함을 받고 용서함을 받아 자 유를 얻는 방법론에서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줄로 안다. 그러면 먼저 루터의 견해를 들어 보기로 한다. 루터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 죄가 남아있다는 주제에 대해 그의[갈라디아서 주 석](Commentarty on Galatians)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① 그리스도인들은 죄가 전혀 없으며, 그들의 몸이 태양처럼 정결하며, 그리고 흠이 없을
정도로 이 세상에서 의롭게 될 수는 없다.
②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여전히 바르지 못한 오점들을 자기고 살지만 그들은 여전히 거룩하다.
③ 그러나 성도들은 반문할 것이다. 나는 죄가 내안에 있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거룩하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안에 죄가 있는 것을 느낀다는 말이 여전히 거룩하다는
증거이다.
④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절망하지 말라. 왜냐하면 병든 사람이 자신의 병약함을 느끼고 고백할 때
그 때가 건강의 처음 단계라고 말한다.
⑤ 죄로부터 어떻게 구원을 얻을 것인가를 염려하지 말고 의사이며 마음을 치료해 주시는 그리스도께로
나가라. 그리스도는 죄인에게 분노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⑥ 이성(vgrufa)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은 하나님이 전능하시며, 자비하시며,
진실하심을 믿는 믿음이 일어나 하나님을 의롭다? 56; 찬양하기 때문에 당신은 여전히 의로운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⑦ 그리스도인안에 남아있는 죄는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 당신이 믿는 완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를 받게된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의가 당신의 의이며 당신의 죄가 그의 죄가 된다.
14)
이와 같이 루터는 죄인이면서 또한 의인이라는 주제에 관해 해설하고 있으며, 그는 세례받은 그리스도 인에게 죄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이 정결하지 못한 죄인 이라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죄 의 용서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용서하신다. 우리의 회개 때문에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즉, 죄를 용서하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용서하신다. 15)
루터는 원죄의 상태에 관해 그의『탁상담화』(table talk)에서 해설하고 있으며, 원죄는 중생(Regeneration)이후부터 치료도기 시작한 상처와 같으며, 아직도 통증이 계속 되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원죄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을 때까지 남아있다. 그렇지만 원죄는 죽은 것이며, 또한 계속 죽어가고 있다. 따라서 원죄의 머리는 여러조각으로 뿌서져서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할 수 없게 되었다16)고 루터는 그의 『탁상담화』(table talk)에서 해설하고 있다. 이것이 루터가 해설하는 죄인인 동시에 또한 의인이라는 내용이 다. 따라서 루터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은 죄인이면서 또한 의인이라는 모순성을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루터의 원죄론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헤그룬트(Bengt H gglund)는 루터의 원죄론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 고 있다.
① 루터는 인간론을 전인(totu homo)적 관점에서 완전성(wholeness)의 개념을 신학적
맥락속으로 도입시켜 해설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신학의 저서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② 루터는 원죄를 단순히 인간 본래의 거룩성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로 보지 않았으며, 그것은 실질적
타락의 형태이며, 완전한 인간 위에 남겨져 있는 흔적이다.
③ 원죄는 영혼의 저속한 힘에속한 부정적 본성으로 이해되고 있는 정욕이며, 또한 인간의 전체적
면에서 영향을 주는 악(evil)이다.
④ 불신은 죄의 근본이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⑤ 모든 죄들을 포함하고 있는 제일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는
것이다.
⑥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인간에게는 죄가 남아있으며, 그것은 감추어진악(malumabsoobitum)이며,
비밀적 방법으로 인간의 상태를 결정지어 주는 신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성경말씀에 비추어 볼 때 죄의 실재성을 깨닫게 된다.
⑦ 원죄란 타락의 형태이며, 그것은 인간의 육체적 출생에 따라 유전적으로 물려받게 된다. 따라서
출생과 함께 부모로부터 유전받은 것이 죄이다.
⑧ 원죄는 단순히 세례에 의해서 제거되는 유죄의 상태만은 아니며, 또한 본성적 타락(corraptio
naturae)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계속 존속된다.
⑨ 원죄는 죄를 짓고 싶어하는 성향(inclination toward evil)은 아니며, 원죄는 인간의 총체적 면에서의
타락을 의미 한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는 인간을 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한 전인적
인간관이다.
⑩ 스콜라 신학자들은 원죄가 세례를 통하여 제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욕의 흔적은 남아있는데,
이것을 죄로 생각할 수는 없고 다만 죄에 대한 성향이라고 했다.
⑪ 원죄의 죄책은 세례를 통해 제거되지만 인간을 타락하게 하는 원죄의 영향력은 중생한 사람들에게
계속 남아 있다. 따라서 죄의 흔적자체가 죄이며 정욕은 죄를 짓게하는 힘일 뿐이다.
⑫ 성령을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의 죄악성은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형태를 보인다.
⑬ 인간은 믿음을 가지면서부터 즉시 영육간에 싸움이 시작된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한편으로는
의로운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죄악된 존재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완전한 의인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육체의 본성으로는 전적으로 죄인이라는 뜻이다.
⑭ 죄와 의는 전체 인간의 영원한 속성이며, 인간은 옛 사람이면서 또한 새 사람으로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같은 한 사람은 "온전한 두 사람인 동시에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이다"(duo toti homines et
unus tltus homo).
17)
이와 같이 헤그룬트 (Hagglund)는 루터의 원죄론을 해설하고 있으며, 그는 원죄의 죄책은 세례를 통해 제거되지만 죄는 중생한 사람에게도 죽을 때까지 계속남아 있다고 해설한다. 그래서 중생한 사람은 의인 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고 말한다.
VI.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루터가 주장하는 즉, 그리스도인에게 남아있는 죄에 대한 문제를 해설해 보았다. 따라 서 필자는 이 문제에 있어서 웨슬리(Wesley)가 해설하는 즉, 그리스도인에게 남아있는 죄에 대한 문제를 해설하고 이 주제를 마루리 하려고 한다. 웨슬리는 신자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 다.
신자 안에는 아무죄도 없고 육신에 속한 마음이나 타락에의 경향성도 없다고 생각하는 견해는 하나님의 말씀과 배치되며 하나님의 자녀들의 경험과도 다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마음 한 구속에 타락하려는 경향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연적으로 악으로 향하게 되는것과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 일에 집착하고 싶은 성향을 계속적으로 느끼며 생활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음속의 자만과 고집과 불신앙을 매일느끼며 심지어 그들의 최선의 행위와 거룩한 직무를 수행할 때라도 그들의 말과 행동에 붙어 있는 죄를 지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단 일순간이라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영과 함께 분명히 증거하고 있음을 느끼고 알게 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을 구속하여 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그들 속에는 죄도있고 영광스러운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도 계신 것을 확실히 안다. 18)
신자 안에 있는 죄는 신자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를 괴롭히고 타락시키기 위하여 가만히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죄가 있는 더러운곳에 들 어와 계실 수 있을까. 분명히 그리스도는 죄가 지배하는 곳에서 죄와 함께 거하실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죄와 더불어 싸우는 각 신자속에 들어와 거하시는 것이라고 웨슬리는 말했다. 19) 다시 말하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간절히 앙망하는 모든 사람속에 그리스도는 기꺼이 들어와 거하신 다. 이것은 마치 의사가 병자있는 곳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죄에 대한 관계에서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중대한 차이점은 불신자는 죄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죄를 의식적으로 범하는데 반하여 신자는 죄와 싸우며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위치에 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수없이 마귀를 대적하라고 가르친다.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심킬 자 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마귀를 대적하는 일을 게을리할 때에 우 리는 마음으로 범죄하게 되고 이어서 실제 행동으로도 범죄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육신을 입고 살고 있 으므로 잠간 동안의 혈기를 참지 못하여 분노하며 때로는 보잘 것 없는 체면 유지를 위해서 우리는 범 죄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나태함에 빠지며 속마음으로는 원치 않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행할 때가 있다. 이와 같은 모든 행위는 마귀를 대적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며 우리를 범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도들의 생활은 마귀와의 싸움이라고 본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싸움의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깨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를 확실히 알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 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능력을 잘 아시느 주님께서는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시며, 또한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신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 10:3).이러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왜 때때로 넘어지며 낙심하고 절망에 빠지는가. 그것은 성도들이 잠깐이라도 하나님 을 의지하는 일을 멈추고 자신의 힘을 의지함으로 마귀에겐 틈을 내 주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죄론은 루터의 죄론과 같지 않으며,루터는 그리스도인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라는 동 시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동시성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 문 제를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cation)로 해결한다. 성화되기 위하여 혹은 거룩해지기 위하여는 죄와는 싱 관 없서는 생활을 해야된다. 그 이유는 거룩과 죄는 서로 공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죄인의 만남은 대속자의 정결케 하는 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죄인을 결코 용서 하지 않으시며 죄를 묵인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대로 한다면 이세상사람은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사람들의 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마련해 넣 으시고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서로 충돌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조회를 이루어 사람들에게는 영생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웨슬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진것은 한번 죄의 씻김을 받고 변화된 사람은 그의 변화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좀 더 완벽하고 분명한 변화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영속적인 것이 되지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변화의 증거는 사랑으로 충만해지며 거룩한 생활을 지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고 변화된 사람 들은 다시는 죄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충만하고 거룩하여 죄와는 상관없는 생 활을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웨슬리는 이러한 상태를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cation)라고 부르며 계속적 으로 온전한 성화를 추구하였다. 다시 말하면 성화의 과정으로 시작해서 온전한 성화의 은혜에서 원죄로 서의 죄의 부패성을 온전히 씻음을 받는다. 이것을 "제2의 축복", 20) '제2의 변화", 21) "온전한 구원", 22)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완전" 23) 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상대적 완전이며, 그래서 인간의 허약성, 무지, 제약성 그리고 실수를 포함하는 ; 완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성들을 죄악시하지는 안았다. 24) 따라서 이러한 완전을 의존적 완전 혹은 동기적 완전이라고 부른다. 이같은 온전한 성화의 은혜는 점진적 으로 계속 성장하여 마침내 "영화"(glorification)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따라서 영화의 단계로 진입하여 인간이 세상에서 지니고 있던 모든 제약성과 허약성 그리고 실수같은 흔적은 사라지고 만다. 이와 같이 웨슬리는 구원의 순서를 선행적 은총으로 시작해서 영화의 단계까지 해설한다. 그러나 그의 구원론은 현 재의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루터는 비기독교인이 중생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부터 죄 인이라는 명칭이 붙어 다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해도 죽을 때까지 평생동안 죄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루터가 주장하는 의인과 죄인의 동시성의 주제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옛 사람이면서 동시에 새 사람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같은 한 사람은 온전한 두 사람인 동시에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이다. "라는 모순이 있는 이론이 등장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루터가 주장한 "의인과 죄인의 동시성"이라는 문제를 온전한 성화론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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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rtin Luther, Commentary on Genesis, pp. 87~93.
2) Hugh T. Kerr. A Compend of Luthers Theology(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Reprinted), pp. 79~80.
3) Hunt T. Kerr, A Compend of Luther's Theology, p. 84
4) Benget H gglund, History of Theology, translated by Gene J. Lund(St. Louis, Missouri :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66), p. 56.
5) John Wesley, Standard Sermons of John Wesley, ed by Edward H.Sugden(London: The Epworth Press, 1921), Vol. Ⅰ, p. 323.
6) Hugh T. Kerr, A Compend of Luther's Theology, p. 84.
7) Works Ⅲ. 27~9(An Argument in Defense of All the Articles of Dr. Martin Luther Wrongly Condemned in the Roman Bull).
8) Martin Luther. Bondage of the Will # CLⅢ, pp. 361 f.
9) John Wesley, Standard Sermons(London: The Epworth Press, 1921), vol. Ⅱ, p. 367~71(On Sin in Believers).
10) Wesley, Sermons, Ⅱ, pp. 360~5.
11) Ibid., pp. 366~7.
12) Ibid., p. 369.
13) Ibid., p. 378.
14) Martin Luther, Commentary on Galatians, pp. 174 f
15) Martin Luther, Table Talk # CCL I .
16) Martin Luther, Table Talk, # CCL Ⅵ.
17) Benget Hagglund, History of Theology, trans., Gene J. Lund(Sain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66), pp. 229~31.
18) Sermons Ⅱ, 368~9(On Sin in Believers).
19) Ibid., p. 369.
20) Wesley, Letters, Ⅲ. 212.
21) Wesley, Letters, Ⅴ. 315. Ⅵ. 116.
22) Wesley, Sermons, Ⅱ. 391(The Repentance of Believers).
23) Wesley, Sermons, Ⅱ. 391(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24) Wesley, Works, Ⅵ. 41 (On Perf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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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Bibliography
The Writings of Martin L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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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her, Martin. "A Commentary on St. Paul's Epistle to the Galatians. Philips" . Waston, ed London: James Clarke,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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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her, Martin. "Luthers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 . Weimar: 1883.
Luther, Martin. "Unbekannte Fragmente" . Erich Vogelsang, ed. Beriia: AKC. 1940
Supplementary Bibliography
Althaus, " Paul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Translated by Robert C. Schultz Philadelphia" : Fortress Press, 1
Anninius, James, "The Works of James Arminius trans. by James Nichols" . 3 vols Kansas City, Missouri: Beacon Hill Press. 1986.
H gglund, Bengt "History of Theology" , tr. by GeneJ. Land. Saint Louis Concoidia Publishing House, 1968.
Kerr, Hugh T. "A Compend of Luther's theology" .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6.
Wesley, John.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London: The Epworth Press, 1954.
Wesley, John. The Standard Sermons of John Wesley. 2 vols, ed. by Edward H. Sugden. London: The Epworth Press 1968.
Wesley, John. "The Works of John Wesley. 14 vols. Grand Rapids, Michigan" : Baker Book House 19
Wiley, H. Orton. "Christian Theology. 3 vok Kansas City, Missouri" : Beason Hill Press,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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