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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료·논문

삼위일체론 세미나

by 해찬솔의 신학 2007. 9. 18.

 

삼위일체론세미나

 

                                                             안명준교수(평택대신학전문대학원)

 

신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서 접근

신론 중에서 삼위일체는 그 핵심이다.

삼위일체는 많은 논쟁을 걸쳐 현재까지 발전하였고

발전할 것이다. 주님 오실 때 까지 완전한 삼위일체론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주제이다. 한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힘든데

세분의 위격과 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관계는 엄청난 주제이다.

 

삼위일체론에 다룰 것은

삼위일체의 중요성과 역사적 흐름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연구

삼위일체론에 대한 진술

 

삼위일체의 논의 시작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의 정체성,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서 시작.

 

 

 

삼위일체의 중요성

 

교회사에서 삼위일체의 위치가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학의 핵심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형성과정은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심하게는

교회의 분열을 가져오는 주제가 되었다. 필리오케 논쟁은 그 예이다.

그러면 왜 삼위일체론이 그토록 중요한가?

그것은 첫 번째 우리의 신앙의 고백에서 삼위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자의 성육신으로 이 교리는 절정을 이룬다. 그 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이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이루어 졌다. 어거스틴은 플라톤에게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는 표현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라는 표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다른 종교는 삼위일체가 없다. 심지어 유대교도 없다. 이슬람은 삼위일체론 꾸란에서(4:171) 강하게 거부한다. 이 교리를 주장하는 자를 철저하게 처벌하였다. 따라서 삼위일체론은 참된 기독교와 타 종교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안명준, “알라의 유일신 개념의 태동과 알라개념에 나타난 문제점”, 기독교와 이슬람, 한국개혁신학회 12권, 2002. 165-6.

 

알라와 하나님의 불연속성이 분명하다. 쿠란에 나타난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삼위일체와 기독론이다. 쿠란은 알라가 삼위일체를 부정한다고 말한다.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는 샤하다의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거부이다. 또 삼위일체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은 4: 171에서 나타난다. “계전의 백성이여, 너희들의 종교의 일로 해서 도를 넘어서는 안된다. 또 알라에 관해 진리가 아닌 것을 한 마디도 해서는 안된다. 잘 들어라, 구세주라고 하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단지 알라의 사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주어진 알라의 말씀이며 알라에서부터 나타난 영혼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알라와 그 사도들을 믿어라. 결코 삼(三)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삼가라. 그것이 너희들을 위해 훨씬 좋은 일이다. 알라는 유일한 신이다. 알라를 찬송하라. 알라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은 모두 알라에 속한다. 보호자는 알라 혼자서 충분하다. 하나님의 어머니는 있을 수 없고, 그녀는 알라의 아들을 낳을 수도 없다(5:116). 아무도 한 인간을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3:64, 9:31). 알라는 그리스도가 아니다(5:17, 9:31). 그들이 자신들을 신들이라고 할 때에 전능하신 분이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를 멸망시키는 것은 작은 일이다(5:17).

쿠란 계시는 신. 구약의 통일성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아닌 단지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방어로서 자신들의 교리를 만들어 자신들의 종교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기능에서 그 문제점을 들어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쿠란에 17번 부정된다 (9:30).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지만(23번) 결코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라는 것이다(3:45). 그는 아담처럼 하나의 피조물이다(3:59).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심을 부인하는 쿠란의 알라는 성경의 하나님 결코 될 수 없다.

쿠란은 성령 하나님을 부정하는데 이에 대하여 압 둘 마시호가 조사한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알라는 우리의 영(19:17, 21:91) 또는 나의 영(38:72, 29:15)이라고 말하면서 항상 창조된 영이라고 설명한다. 이슬람에서는 독립적인 하나님의 영이 존재 못하고 알라는 항상 하나이고 둘이나 셋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알라의 영이란 가브리엘 천사로 본다(2:87, 253; 5:110; 16:102). 이런 경우에 성령이 가브리엘 천사가 되어 성령으로 잉태하사가 가브리엘로 잉태하사로 되는 모순을 가져온다. 성령은 모든 행위에 있어서 알라의 명령 하에(97:4; 17:85; 42:52) 그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알라의 노예이다(26:193).

 

세 번째 이교리는 신학의 건전한 균형을 이룬다. 성부만이 독점이 아니면, 아들은 종속되지 않으며, 성령은 능력적인 존재가 아닌 모두 권능과 영광에서 동일하시며 3위로 계신 한분 하나님으로서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조화롭게 역사하신다. 삼위일체는 기독교 신학을 역동적으로 만드신다.

네 번째 이교리는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성부만이 참된 하나님으로 주장하는 잘못된 교리를 정죄하며, 성자가 성부에게 종속되는 것을 반대한다. 성령 하나님 역시 성부와 동일한 하나님으로 말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다.

 

 

삼위일체(Trinitas)의 역사적 배경

 

삼위일체는 기독론과 결부되어 나왔다. 여러 이단과 오류를 극복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유대교의 유일신사상과 유리테리안 사상을 극복함.

 

삼위일체의 정의

 

정의 하나님은 그의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 불리우는 삼위(삼인격)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삼위는, 여러 사람의 여러 인격들처럼, 전혀 분리된 세 인격이 아니다. 삼위는 오히려 신적본질이 존재하는 세 형태인 것이다.

 

Trinitas -

* one indivisible essence(하나의 분리되지 않는 본질)(ousia, essentia, from esse, to be). 하나님을 그의 본질적 존재 혹은 구성된 본질(consitutional nature)에 있어서 하나이시다.

 

* three Persons(위) or individual subsistences(존재)(substantia, substare-the latent possibility of being. Latin- persona, Greek- hupostasis, three different modes of existence or subsistence) 인격이란 의미는- 자의식을 소유하고 모든 변화안에서 자신의 신분을 의식하는- 구분된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개인을 말한다.

 

역사적 배경

 

유대주의 유일신론, 유일신론은 다른신에 대해 배타적이나 단일신론은 다른 신들의 존재를 배타적이지 않다.

엘과 야웨는 서로 다른 신인가? 엘은 좀더 일반적인 신으로 표현되고 야웨는 좀더 구체적인 사건과 약속에서 표현되는 하나님으로도 같은 분이시다.

 

이 교리의 발전

 

안디옥의 데오필로스(Theophilus)는 아버지, 아들, 성령을 처음으로 셋 한쌍(τριας)이라는 말로 사용하였다. “천체가 생기기 이전에 있던 사흘의 시일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그의 지혜의 셋한 쌍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초기변증론자들 - 하나님의 존재를 삼위일체의 개념에서보다는 세쌍의 존재로 이해하였다.

성자와 성령을 동일시하지 않았고, 이 두 분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서 요한 복음의 로고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레니우스 - 노스틱주의와 논쟁에 있어서 성자와 성령은 다같이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한고 하였다.

 

터툴리안의 주장 - 최초로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 교리를 공식적으로 제시하였다. “나는 셋이 결합된 하나의 본질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삼위는 본질의 통일에 의하여 모두 일체에 속한다.... 그러나 삼위는.... 그 본질이 셋이 아니라 양식이 셋이며, 그 능력이 셋이 아니라 표현이 셋이다.”

로고스는 창조시 위격(인격)이 됐다는고 주장함으로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나, 문제는 창조시에 로고스(성자)가 성부에 종속된다고 말한 점이다.

 

오리겐 - 그는 로고스가 창조시에 비로소 인격이 되었다는 변증론자들과 터툴리안의 견해를 버리고, 로고스는 창조 이전에 태초로부터 한 인격이라고 주장하였다. 오리겐은 하나님으로부터 누스(nous, 지성, 이성)가 나온다고 가르친 신 플라톤의 사상을 따라서 아들이 영원한 출생 교리를 제시했다. 아들의 출생은 영원하고 영속적이다. “아들이 출생(genesis)은 마치 태양이 광채를 낳는 것처럼 영원하고 영속적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똑같이 영원하다는 개념은 후에 곧 동질(ύμοουσιος, homoouios)이라는 개념을 창출시키는 계기가 된다,

 

아리우스는 - 오리겐의 좌파적 기독론(종속론)을 발전시켰다. 성자는 성부 다음가는 제2의 하나님을 말함으로써 이단으로 흘러 버렸다.

 

아타나시우스 - 동일 본질(ύμοουσιος, homoouios)을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정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 가지의 삼위일체

 

1) ontological Trinity(본체론적 삼위일체)- 내향적 사역(opera ad intra)

 

순서 -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는 성경이 진술한다. 각 위의 실존의 순서이지, 시간이나 본체적 위엄의 선후가 아니다. 인출(derivation)의 논리적 순서이다. 즉 성부는 다른 위에서 나오지(proceed) 않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적으로 나으시지 않고(generation),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부터 발출하신다. 본체적 내면적 생활에서 성부, 성자, 성령은 실체에서 동일하시고, 속성과 권능에서 동일 영광도 동일하시다.

 

2) Economic Trinity(경륜적 삼위일체)-외향적 사역

 

삼위의 하나님이 외향적 사역(opera ad extra, outgoing works)에서 피조물과 어떤 관계가 있나. 창조는 성부에게, 구속은 성자에게, 성화는 성령에게 돌려진다.

 

군주론(Monarchianism)

Monarchianism(군주신론, Tertullian 최초로 사용 문자적 의미- 'single and individual rule', 한 개인의 통치)

제베르그의 견해- 군주론자들은 로고스 기독론에(노스틱이라고 생각함) 반대,

 

2가지 군주론

 

Dynamistic Monarchianism(동적 군주론)

 

성부만 오직 하나님, 예수는 신성이 없는 단순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단순한 능력(δυναμις)으로 간주. 그들의 출발점은 인성. 인성이 신격화됐다고 주장. 공관 복음서적 그리스도를 강조.

* 동적 군주론은 역사적 그리스도의 인격성을 보존하고 그의 본질적인 신성을 희생시킴.

그리스도의 역사적 인간적 인격에서 출발하여 단순한 인간으로 전락시킴.

사보나타의 바울이 주장

 

Modalistic Monarchianism(양태 군주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양태(modus) 혹은 현현으로 생각. 그리스도의 군주 혹은 신성을 강조.

* 양태 군주론은 그리스도와 성부의 본질적 통일성을 보존하고 그의 인격적 구별을 희생. 천상의 그리스도로 출발하여 참된 인간성을 위태롭게 함.

 

Noetus - 하나님 자기 자신에게서 아들로 난 것. 성부수난설 주장

Praxeas - patripassianism(성부 하나님도 아들과 함께 수난을 당함)를 주장.

Sabellius(c. 190 - 260) - 어떤 사람보다도 진정한 양태론자.

하나님은 단일한 실체요(μονας) 단일한 인격인데, 세 가지의 상이한 양식(όνοματα προσωπα, modus양태, 표현 방식, 현현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주장.

하나님은 자기를 창조주 아버지로, 구속자 아들로, 정결케 하시는 성령으로 나타내신다.

한 인격에(동일 인격) 의해서 행하여진 세 가지의 역할이다. 예- 태양은 빛, 열, 둥근 형체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태양이다. 즉 단일 실체, 단일한 인격이다.

하나님을 단일 실체로(μονάς, monas, monad, unity, 단일체)이기에 그의 존재 안에는 구별이 없고 성부, 성자, 성령은 단일한 하나님의 세 가지 현현 양식(πρόσωπα, persons). 

확장과 수축의 개념으로 설명 - 성부(율법 수여자하고 본래적 상태로 환원), 성자(다시 아들로 성육신, 승천 후 절대적 실체로 돌아감), 성령(교회를 성화 후 돌아감)

Sabellius의 문제점을 아래와 같다.

 

He depersonalized the Logos as simply the inherent rationality of God, which led him to formulate a doctrine of the homoousia of the Logos and the Father which necessarily denied the personal subsistence(존재) of the preincarnate Word.

 

Logos 라는 말을 사용한 이유는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논하기 위하여서다. 로고스 비인격화 시켰다.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로 보지 않았다.

여기서 homoousios(동질)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로고스를 한 인격으로 본다. 후에 말키온(Malchion)장로가 사모나타의 바울의(동적 군주론자) 동질이라는 말을 배격하였다. 중요한 기독교의 역사였다. 그리스도의 선재를 부정하는 기독론은 사라짐.

* 동일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후대 기독교에 세 인격의 동등한 본질, 동등한 영원성을 암시하게 했다.

 

 

현대의 삼위일체 이단

바르게 알려서 유혹되지 않게 해야한다.

 

유대인

여호와 증인

유니테리안

통일교

몰몬교

자유주의 신학

바르트의 삼일성- 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은 아니지만 아주 가깝다. 하나님은 계시자요 계시는 성자이며, 계시됨은 성령이시다. 계시론적으로 해석하였다.

*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에 가깝다. 그는 person보다 mode라른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이 경향으로 흐른다. 예수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2번째 존재의 양태(mode of Being, Seinsweise). CD. I. 1, p. 350-51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 그의 교리는 삼일성(Dreieinigkeit, triunity) - 항상 하나로 되어지는 하나의 존재의 단일성(the unity of a being one which is always also a becoming one. CD. 1. 1, p. 369)

 

On the trinity of God, Barth says,

the name of Father, Son and Spirit means that God is the one God in threefold repetition, and this in such a way that the repetition itself is grounded in His Godhead, so that it implies no alteration in His Godhead, and yet in such a way also that He is the one God only in this repetition, so that His one Godhead stands or falls(달려 있다) with the fact that He is God in this repetition, but for that very reason He is the one God in each repetition.(p. 350)

. . . . what we to-day call the personality of God belongs to the one unique essence of God which the docrine of the Trinity does not seek to triple but rather to recognise in its simplicity. . . . Person as used in the church doctrine of the Trinity bears no direct relation to personality(인격[위]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The meaning of the doctrine is not, then, that there are three personalities in God.(350)

 

Barth는 삼일성에 관해 양태론적인 접근으로 설명한다. 신의 존재 양태로 이해.

 

They(Father, Son and Spirit) rather imply- for where there is difference there is also fellowship - a definite participation of each mode of being in the other modes of being(존재의 각각 양태가 존재의 다른 양태에 한정적으로 참여), and indeed, since the modes of being are in fact identical with the relations of origin, a complete participation of each mode of being in the other modes of being.(CD. 1. 1, 370)

 

WCF(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 3, "In the unity of the Godhead(본체, 신격, 신성)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

 

 

 

 

성령의 이중발출

 

WCF(정의와 성령의 이중 발출)

 

In Deitatis unitate personae tres sunt unius ejusdemque essentiae, potentiae ac aeternitatis; Deus Pater, Deus Filius, ac Deus Spiritus Sanctus. Pater quidem a nullo est, nec genitus nempe nec pracedens: Filius autem a Patre est aeterne genitus: Spiritus autem Sanctus aeterne procedens a Patre Filioque.(그리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발출한다 - 이중발출)

 

여기서 이중발출의 문제를 설명하기로 한다. 발출은 파송으로 말하기도 한다.

 

Filioque에 관한 논쟁, 그리고 발생과 발출에 관하여

 

1. 성령의 이중 발출- 문제의 발단

 

325년 원문 Nicene Creed에다가 filioque(그리고 아들)를 삽입함으로 성령의 이중발출설을 만듦

 

원본과 동방교회의 Nicaeno-Constantinoploitan Creed(381)에는 다음과 같이 성령의 발출(그리고 아들)이 없었다..

εκ του πατερος εκπορεουμενον. ex Patre procedentem(하나님으로부터 발출).

후에 서방의 로마카톨릭교회에서 그리고 아들(필리오케)의 문구를 삽입하였다.

Et in Spiritum Sanctum, Dominum et vivificantem, qui ex Patre [Filioque] procedit;(그리고 아버지와 [그리고 아들]로 부터 발출한 성령, 주님, 그리고 생명을 주시는 분을 (나는 믿는다).

 

현재 로마카톨릭과 개신교는 이중발출을 따른다.

 

2. 역사적 배경

 

filioque에 관한 논쟁 - 성령은 영원히 성부와 성자로 부터 나오셨다.

니케아신조에 W. Church가 첨가, 스페인의 톨레도(589)의 제 3차 회에서 보충해 넣음.

 

동방교회의 갑바도기아교부들(지금 터어기, 소아시아)- Theodore of Mopsuestia과 테오도레트은 이중 발출을 반대, Photius는 이중발출을 정죄함. 그러나 Didymus the Blind와 페피파니우스는 2중 발출을 주장함.

성부만이 모든 것들(성자와 성령까지 포함하여)의 유일하게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간주.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유출하고, 그러나 그 방법은 다르다. 하나님이 말씀을 공포하시고 이 말씀이 들려지고 받아지도록 숨을 내쉰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들과 성령의 유출한 방법이 다른 점에 많은 노력을 한 이유는 아들과 성령이 한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 방법이 다른 점을 알지 못한 경우에 하나님이 두 아들을 갖게되는 문제점을 갖기 때문이었다. 성령이 아들로부터 기원한다면 한 하나님의 신성에 2개의 기원이 있어야함은 또 문제였다. 이것의 서방 교회의 2중 발출을 반대한 이유이다.

Vladimir Lossky, "The Procession of the Holy Spirit," - 서방을 비판- 1. 성령의 비인격화, 2.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잘못되게 강조, 3. 신성을 비인격적 원리로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서방 교회 - 어거스틴의 on the Trinity에서 발전된 이중발출을 말한다. 히에로니무스와 암브로시우스도 주장.

알렉산드리아의 시릴은 성령은 아들에게 속했다고 말하였다. 포이테에르의 힐라리는(On the Trinity)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라고 주장하였다(2위일체). 그는 신약에 근거하여 성령은 아버지만 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한다고(proceed) 주장.

어거스틴은 예수께서도 숨을 내쉬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는 요한복음 20:22에 근거하여 성령이 아들로부터 발출(proceed)한다고 (On the Trinity 15.26, p. 224)에서 말했다. (The Holy Spriit twice given by Christ. The Procession of the Holy Spirit from the Father and from the Son is apart from time, nor can He be called the Son of both.)

ενεφυσησεν - 그가 쉼을 내쉬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말씀이 태어났고, 성령은 발출되었다고 함. (참고 창 2:7.) 따라서 학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성령을 발출(보내겠다)하시겠다고 직접 말씀하신 단어에 근거하여 발출이라는 용어를 아들과 성령의 관계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성령이 발출했다(태어났다, begotten)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만일 아버지와 아들 두 분이 성령을 낳아다면(발생, begotten), 성령이 아버지의 아들이요 그리고 아들의 아들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이기에 그렇다고 한다.(225)

서방은 영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보았다. 어거스틴도 마찬가지다.

리용회의(the Council of Lyons)는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하지만, 그러나 2 기원이 아닌 하나의 기원으로 발출한다고 말한다 (yet not as from two origins but as from one origin).

 

3. 발생과 발출에 관하

 

Generation(gennesis)는 성자에게 Procession(εκπορεουσις)는 성령에게 사용된다. 의미의 차이점은 쉽지 않다.

 

A. 두 용어의 사용의 차이점

 

동방교회는 1) 요한 15: 26에 근거하여 The Father alone can process the Holy Spirit, an etrnal matephyical procession of the Holy Spirit. 2) 요한 14: 26, 16:7은 예수께서 성령님을 일시적으로 파송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the temporal mission of the Holy Spirit). 성육신 중심의 기독교. 히브리적 전통적 유일신관을 지지, 예수의 인간성 강조.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중심으로 그의 품격을 생각함.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신학이다. 성령-기독론이다.

 

서방 교회는 구속론 중심의 기독교( 터톨리안의 만족설에서 시작). 사도들의 전통과 계시, 신앙을 중시함.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의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론.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임을 강조함과 영향력. 로고스-기독론이다.

다마스커스의 존은 발생과 발출의 차이점이 있으나 차이점의 본질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함(Exposition of the Orthodox Faith 1.8).

어거스틴은 둘이 차이가 있지만, 둘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차이점을 알지 못한다고 함(Contra Maximinum 2.14). 또 그는 (De Trin. 9.17) 성령이 태어났다고 표현하면 그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에 성령이 발생했다고(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Scholastics는 - 발생과 발출의 차이점을 2개념에서 끌어낸다. modum intellectus(the operation of the intellect)-그가 하나님의 지혜라고 불리우기에, modum voluntatis (procession by way of the will)-그가 사랑과 자비라고 불리워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개념의 설명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또한 아래와 같이,

그들은 3가지로 주장-

1) 기원에 관하여 아들은 아버지에게서만 왔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왔다.

2) 양태상(형태에) 아들은 발생(독생되어서)되어서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즉 아들은 발생에 의하여 유출하여, 인격과 유사(아버지의 형상이라고 불리어지고, 아들은 다른 위격들과 속성을 교환할 있음 그러나 성령은 다른 위격과 속성의 교환을 할 수 없다.)에로 종결되었다.

3) 아들은 제위 인격이고 성령은 제 3위 인격이시기 때문에 발생은(generation) 발출(spiration)보다 앞선다. (Francis Turren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p. 309)

 

서방은 동방이 Athanasian Creed 7조에 monou(오직)라는 용어를 삽입한 것을 비난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apo tou monou patros).(Ibid)

Council of Florence(1439)에서 동방과 서방이 합의- the Holy Spirit proceeds from the Father through the Son. 그러나 동방은 합의서를 후에 취소함.

 

Turrentin thinks the Western view more agreeable to Scripture and the truer.

서방교회는 주장

1) 성령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로부터 보내진다(요. 16:7). 그러므로 아들로부터도 발출된다.

2) 성령은 아버지의 영뿐만 아니라 아들의 영도되신다.(갈 4:6-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사. 여기서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라고 바울이 말함)

3) 요한 16:13-15에서 성령이 갖는 무엇이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부터 갖는다. 그리스도가 자신에 관하여 말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처럼 성령도 그리스도에 관해 듣고 말하기 때문에 아들로부터 왔고 그로부터 유출된(proceed) 것을 말해야만 한다.

4) 요한 20:22에 근거하여 예수님도 성령을 내 쉬었기 때문이다.(Francis Turren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1, pp. 309-310.)

 

L. Berkhof, Systematic Theology, p. 97. 그는 3가지로 말하는데 설명이 약하다.

 

1) 발생은 오직 아버지의 사역; 발출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역

2) 발생(독생)함으로써 아들은 발출의 사역에 참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성령은 그런 힘을 요구하지 않는다

3) 논리적인 순서로 발생은 발출보다 앞선다.

* 이중발출의 근거는 요한15:26, 롬 8:9, 갈 4:6

 

* 만들어 졌다(made)라고 용어를 사용하면 만들어진 자는 만든 자 밖에 있게되고, 만든 자보다 질적인 차이가 있게되기 때문에 태어난(begotten)이 라는 용어를 사용함. 즉 아들과 아버지는 동일 본질(consubstantial)을 말한다.

 

A. A. Hodge

Generation-an eternal personal act of the Father, wherein, by necessity of nature, not by choice of will, he generates the person (not the essence) of the Son, by communicating to him the whole indivisible substance of the Godhead, without division, alienation, or change, so that the Son is the express image of his Father's person, and eternally continues, not from the Father, but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the Son. Cf. Heb. 1:4, John 10:38, 14:11, 17:21. 5:26. (Outlines of Sys. Theo. 182)

Procession- to designate the relation which the third person sustains to the first and second, where in by an eternal and necessary, i. e., not voluntary, act of the Father and Son, their whole identical divine essence, without alienation, division, or change, is communicated to the Holy Ghost.(189-190)

 

결론

 

발생과 발출은 성자와 성령에 각각 성경에서 사용되었던 용어로서 본질적인 차이점을 인간의 이성과 표현을 가지고 쉽게 구별할 수 없지만, 삼위일체에서 있어서 3위를 인격적으로 구별하는데 사용된 것은 확실하다. 특별히 그 출처에 대하여 분명한 근거가 있다. 오직 성부 하나님만은 발생되지도 않고 발출되지도 않았으며 그분만이 성자를 발생시키고 성령을 아들과 함께 발출하셨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용어들은 적절한 성경적인 표현이다.

 

 

현대신학자들의 신개념

 

바르트 -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인식할 수 없는(incognitio) 초월적 하나님을 주장.

절대타자(the Wholly Other)의 하나님을 말한다.

브루너 - 절대적인 인격자, 절대타자로서 초월성을 강조한다.

불트만 - 하나님은 인간 삶에 대한 우리의 진술이다. 누군가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실존주의적으로 이해

틸리히 - 상징적인 존재. 신은 존재의 기반이다.

몰트만 - 미래에 약속의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나는 미래의 존재자, 세계 앞에 있는 존재자.

판넨베르그 - 보편사적 초월과 역사의 종말에 가서 신으로 나타나는 분.

 

비판과 적용

현대 신학자들은 처음부터 신 개념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성경을 토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형이상학적, 실존적, 세속사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과연 이들의 신관이 얼마나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얼핏 건질 것이 없겠으나, 현대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생각하는지 그들이 어떤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지 알 수 있다. 단지 우리는 선별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성경의 눈으로 살펴서 도움이 된다면 이용도 가능할 것이다.

 

 

 

 

 

 

 

 

 

 

 

 

Hermann Bavinck의 개혁주의 신론

 

구약의 삼위일체론

1). 신약적 삼위일체의 예시(foreshadowing)

2). 구약의 사실

1.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지혜가 인격화되어 표현된 구절들(시 33:6

 

2. 하나님의 성신이 구별된 인격으로 (창 1: 2. 시 33:6

 

3. 여호와의 사자(창16:6-13

 

4. 대제사장의 삼중적 축복(민 6: 24-26)

 

5. 신적 존재 안에 구별이 있음을 시사하는 구절(창 19;24

 

6. 세 인격(시 33:6, 사 61:1

 

 

신약

 

1. 구약의 가르침을 발전

2. 어디서나 전제되고 함의

3. 신약은 구약의 삼위개념에 근거, 성부, 성자, 성령은 구약과 같다.

4. 여호와는 아버지 하나님, 성육신, 성령의 나오심에서 구약 예언의 성취와 신약의 삼위일체론의 근거를 가진다.

5. 신약은 더 분명하며, 신약 전체가 삼위일체적이다.

1) 그리스도의 지상새활-마 1:18이하, 마 3:16이하

2) 예수의 가르침 마 28:19

3) 사도 가르침, 고전 8:6, 고후 13:14, 살후 2;13, 엡 4:4-6

 

 

  Hermann Bavinck의 개혁주의 신론

구약의 삼위일체론

1). 신약적 삼위일체의 예시(foreshadowing)

2). 구약의 사실

1.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지혜가 인격화되어 표현된 구절들(시 33:6

 

2. 하나님의 성신이 구별된 인격으로 (창 1: 2. 시 33:6

 

3. 여호와의 사자(창16:6-13

 

4. 대제사장의 삼중적 축복(민 6: 24-26)

 

5. 신적 존재 안에 구별이 있음을 시사하는 구절(창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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